사서로운 이야기

[프롤로그]

by 느닷

문헌정보학(더 옛날엔 '사서학과')을 전공했지만 싸이월드에 빠져 컴퓨터를 끌어안고 살다 컴퓨터 강사가 되어 졸업해 버렸다. 그러다 웹 디자이너로 이름표를 바꿔 달고는 웹 세상을 허우적 대며 잠시 도서관을 잊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도서관이 내게 온 것은 2004년 울산 북구 기적의 도서관 개관 즈음이다. 우연히 도서관 개관 준비를 도와줄 사서 봉사자가 급히 필요하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는 한 시간 거리의 그곳을 무작정 찾아가 봉사를 시작했었다. 도서관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니까.


도서관에서의 봉사는 뒤늦게 내 가슴을 뛰게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취업으로 연결되는 아름다운 세상은 아니었다. 아쉬운 대로 도서관에서 동화구연 봉사를 꾸준히 하게 되었고 그렇게 여러 도서관 언저리를 기웃거린 세월이 10년이다. 결국 많은 시간 돌고 돌아 나는 기적처럼 초등학교 도서관의 늦깎이 사서가 되었다. 누구보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해 왔던 만큼 출근할 때마다 덕업 일치의 행복을 누릴 것이라 자신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이었다. 현장의 실무는 이론과 매우 달랐으며 초보 사서에게 냉혹했고, 직장생활의 고단함은 교육기관이라고 특별히 너그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서관은 우리의 도서관이 되어가고, 학생들은 우리 도서관의 아이들이 되어갔다. 책도 얼마 없고 사서도 없던 곳에 사서라는 관리자가 생기면서 무늬만 도서관이던 곳이 아이들의 쉼터이자 성장의 씨앗을 나누는 곳으로 변모해 가는 신기한 과정을 지켜보았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 그리 된 것은 아니다. 학부모 도서 도우미와 학생 도서부의 봉사, 선배 사서님들의 감사한 연대, 학교장과 교사들의 긍정적 협조 등 모든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가 주었다. 특히 '행복학교'에서의 학교도서관이라 일반 학교와 조금은 다른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쌩 초보시절 눈물도 많이 흘리고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나은 도서관이라는 보람의 열매를 맛보았다. 운이 참 좋았다. 돌이켜 보면 사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행복학교 과정을 운영하는 초등학교 도서관을 만난 것도, 이런 직장 동료와 학부모와 아이들을 만난 것도 다 감사한 일이다.


사실 예산과 정책적인 문제로 사서가 있는 학교도서관보다 사서가 없는 학교도서관이 훨씬 많다. 공공도서관 역시 정규직 사서보다는 비정규직 사서가 많고, 사서업무를 대신하고 있지만 사서가 아닌 분들도 정말 많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도서관의 나아갈 방향과 사서의 유용함에 대해 함께 관심 가지고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모든 아이들의 생애 첫 학교도서관에 부디 사서가 있기를 꿈꾸며 호기로운 첫 발을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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