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자줏빛, 비췻빛... 그 모두가 너야

너는 너야

by 느닷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기대하는 바람은 간단했다.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 하지만 나는 집중력이 짧고 산만하며 암기에 약한 학생이었다. ‘국어’ 외에 달달 외워서 정답을 맞히는 다른 과목의 시험은 너무 어려웠다. 남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무한경쟁 시스템은 아무리 겪어도 적응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생의 의무를 등한시한 적은 없기에 그럭저럭 평균값의 어디쯤을 맴돌았지만 공부 못하는 학생을 대하는 어른들의 평가는 비슷했다. ‘왜 열심히 안 하냐.’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고, 글짓기를 하는 창의적인 활동은 공부 못하는 아이의 딴짓거리일 뿐 ‘열심히’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 성적표를 내밀 때마다 실망하는 부모님 앞에서 나는 못난이가 되었다. 성장기의 나를 반추하는 세상의 반응을 보며 나의 자존감은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누군가는 나의 그림을 즐기고, 내 글을 읽은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을 수도 있지만 양껏 주눅 들어있던 어린 날의 내 가슴에는 가끔 들리는 비난의 말과 행동이 훨씬 큰 비수가 되어 흔적을 남겼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인색한 어른이 되었다.


삶의 풍파 앞에 힘없이 고꾸라져 고뇌하던 어느 날 멋진 문장 하나가 내게로 왔다.

‘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류시화 시인의 ‘마음 챙김의 시’에 담긴 문구이다. 시를 읽는 순간 등이 뻐근하며 진짜 날개를 찾아 단 것 같이 새로운 시야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내게 날개가 있다고 믿는다면, 내가 날아오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날개 달린 마음으로 어쩌면 나도 날 수 있겠구나! 남들이 말하는 ‘나’ 말고 나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내 안의 ‘나’가 나를 부추겼다. 내 소망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유능한 지원군을 내 안에서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미처 몰랐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믿게 해주는 확언을 듣고싶었던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은 언제나 일어난다. 계획하고 목표했던 무엇 앞에서 실패하고 갈등하는 과정은 필수불가결한 삶의 한 부분이다. 무례하거나 상식 밖의 사람도 늘 존재한다. 나와 꼭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기에 나와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며 사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다양한 사건을 두고 나름의 해석을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때 중요한 것은 판단의 기준이다. 외부의 시선으로, 세상의 견해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나만의 소신과 철학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어린 날의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에 대한 기준이 내 안에 없으면 바다에 표류하는 부표처럼 마음이 쉴 새 없이 사방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남들은 내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수 없다. 한 이불 덮고 사는 사람조차 그러하다. 그저 어떤 한 부분을 보고 평가한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 나라는 사람은 그들의 말에 일희일비 하게 된다. 주객이 전도된 꼴이니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나’에 대한 판단은 ‘남’이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말하는 대로 살게 되어 있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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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까마귀2.jpg '나는 까마귀 / 미우 / 노란 상상'
오늘의 그림책은 '나는 까마귀 / 미우 / 노란 상상'입니다. '말’과 ‘자아’의 힘을 이야기하는 그림이 가득한 책입니다. 혹시 나의 ‘말’이 누구를 죽이는 말은 아니었나, 혹시 오늘 나의 ‘말’이 누구를 빛나게 해 주었나 돌아보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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