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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쌤!에필로그

저는 100권이나 읽었어요 - 에필로그 -

by 느닷

IB교육, 통합교육, 창의융합교육등 미래교육을 표방한 다양한 이름들이 수시로 나타나는 세상이지만 그 어떤 교육에도 독서가 빠지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독서도 변하고 있다. E-book을 들으며 운동을 하고, 먹거나 떠들면서 읽고, 이동을 하면서 읽는다. 어느새 다중적 시간사용이 일반화된 사회가 되었다. 모든 것이 복잡하고 바쁘고 빠르다. 그러니 도서관에서 만이라도 훼손되지 않고 오롯이 독서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홀로 깊이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서는 도서관이라는 시간보호구역의 파수꾼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진급도 없는 직급인데 뭐 하러 그리 열심히 일하냐고, 그렇게 적어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다 소용없다고 타박하기도 했다. 어쩌면 5년 뒤의 내가 견딜 수 없는 무력감과 함께 누군가에게 하고 있을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더 기록하고 싶었다. 그런 타박을 하는 이들에게도 분명 있었을 초심. 누군가에게 닦이고 꺾이어 무뎌지기 전의 뜨거운 마음을. 이 책이 다정히 손 내밀어 굳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원고를 마무리할 즈음 만기가 되어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장서규모, 공간, 학생 수, 교육 철학, 운영방침, 관리자와 동료, 지역 분위기 등 모든 것이 다른 곳이다. 새로운 곳에서 나는 어떤 사서로 존재하게 될지 가늠할 수 없기에 며칠 밤 잠을 설치기도 했다. 도서관은 주변환경과 여건에 맞춰 이용자와 조화를 이루며 운영되어야 하는 곳이기에 사서의 업무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해석에서 나오는 해답이 있을 뿐.


조금 살아보니 세상엔 정답이 정해진 일 보다 정답이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학교는 언제나 정답만 가르쳐준다. 배운 적 없는 해답은 알아서 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파고든다. 남의 오답지를 보며 안전하게 좌절을 경험하고, 성장의 동력을 발견하고, 손끝 너머로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내 치기 어린 초심으로 엮은 소견들을 담았다. 아무도 내게 하지 않는 질문에 밤마다 정성스레 홀로 답했다. 그러니 더 오랜 경력과 높은 학식을 갖춘, 또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근무하는 누군가의 눈에는 오답 투성이 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마무리하는 글까지 읽으셨다면 안전한 실패담 또는 나만의 작은 해답 정도는 얻으셨기를 기도하며 감사의 인사를 덧붙이고 싶다.


2024.1.23. 느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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