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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May 06. 2024

그걸 소비하면 행복해지는 거 맞아?

어떤 가구가 필요하세요?/ 이수연 글, 그림 / 리잼출판

겨울에는 설날이 있고, 봄에는 가정의 달이 있고, 여름에는 휴가철이 있고, 가을에는 추석이 있다. 우리는 계절별로 시간을 나눈 다음 그 시간에 누구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렇게나 선명하게 달력에 정해두고 매년 반복하며 살고 있다. 농촌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와 평생을 함께 살던 세상에서는 이런 절기별 규칙들이 꽤나 의미 있고 안정적인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AI가 모든 노동을 대신할 것이라 외쳐대며 정신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이다. '시대예보' 송길영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핵개인'의 시대에서 분절화된 가족을 경험하고 있는 대다수의 개인들은 구시대적인 관습을 불편해하고 있다. 설날마다 모여서 나누는 안부와 걱정이 껄끄러울 수 있고, 가정의 달이라지만 선물을 나눌 가족이 없을 수 도 있다. 휴가철이라고 가족과 무조건 함께하기보다는 각자의 취미활동을 하는데 시간을 따로 쓰기도 한다. 다변화된 세상에서 나를 '우리'라는 관계에 고정시켜 두기에 불안한 많은 이들이 홀로 각개전투를 하며 살고 있다. 결혼도 출산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나 하나의 생존만으로도 버거운 많은 이들이 '핵개인'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을 버티며 살고 있다. 


제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해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습성이 없어졌을 리 없다. 나 홀로 고고히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딘가에 '우리'라고 엮여있지 않으면,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고 받을 대상이 없으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공허하다. 수많은 사람 속에 섞여 있어도 나와 일면식 없고 무관한 사람들이라면 어떤 위로나 감정도 함부로 나누기 어렵다.


이수연 글, 그림 / 리잼출판 /2015


인파로 가득한 708번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손잡이를 움켜쥐고 서 있는 곰 한 마리. 그림책은 표지부터 의문 투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구는 옷장이나 침대 같은 가구일까? 4인가구/1인가구 등을 칭할 때 그 가구일까? 둘 중 어느 쪽이든 왜 하필 표지에는 회색 버스가 등장하는 것일까? 어째서 곰만 색이 있는 것인가? 아니 어째서 사람 사이에 홀로 곰인가?


주인공인 곰은 가구를 팔러 다니는 영업사원이다. 수많은 여우들 가운데 홀로 눈치 없는 곰으로 열심히 가구를 팔러 다닌다. 그는 방문하는 곳마다 꼭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떤 가구가 필요하세요?"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 사는 멧돼지 아주머니, 아이와 단 둘이 살지만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는 펭귄 아저씨, 아코디언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캥거루 아저씨, 왕년에 멋있었던 수많은 양복과 가족사진은 있으나 가족은 없이 사는 사자 할아버지. 곰은 이들이 원하는 가구를 넣어 주었지만 그들은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물건이 맞는가? 지금 나의 허전함과 공허함은 가구가 없어서 그런 것이 맞는가? 가구를 사고 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 우수 사원으로 뽑혀 상까지 받았지만 마음이 허전한 곰을 보며 독자는 삶에서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곰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물어본다. 

"어떤 가구가 필요하세요?"


곰은 자신을 위한 커다란 식탁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 일은 처음으로 곰을 설레게 해 주었다. 장식장 안의 접시를 사용하며 즐거운 멧돼지 아주머니,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선 펭귄아저씨, 식탁을 둘러싼 사람들을 위해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캥거루 아저씨, 멋진 양복을 꺼내 입은 사자 할아버지.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이 웃고 있다. 모두가 둘러앉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는 식탁. 곰에게 필요한 것은 식탁이었다. 


나에게 곰의 식탁과 같은 존재는 그림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림책으로 만난 사람들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일상을 격려하고 음식을 나누는 중에 '우리'가 되고, 그림책을 읽으며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선물 받는다. 그림책을 읽으며 지난 상처를 다독이고, 어리석은 나를 깨우치며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다만... 나에게 필요한 것이 그림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도, 나 조차도 내게 묻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혹시 지금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에너지와 시간이 있다면 가까운 이들에게 이 그림책과 함께 한 번쯤 질문해 주면 어떨까?


어떤 가구가 필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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