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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Mar 22. 2024

춤추는 수건은 일기를 쓰고 싶게 만든다

"선생님 이 책 재미있어요?"

매일 듣는 질문이다. 읽은 책 보다 못 읽은 책이 훨씬 더 많고, 안 읽었어도 좀 알기라도 하는 책 보다 도통 낯선 책이 더 많다. 명색이 사서인데, 딴에 선생님이라 불리는지라 아는 체를 하고 싶지만 거짓말은 꼬리가 길어 골치 아픈 법! 나는 늘 솔직하게 답한다. 솔직이라도 해야 사서로서 내가 제공하는 나머지 정보의 신뢰를 지킬 수 있다.

"선생님은 못 읽어 본 그림책인걸? 다희가 읽고 재미있는지 어떤지 이야기 좀 해줄래?"

2학년 꼬마는 도서관 구석으로 가서는 별것 아닌 내 부탁에 비장미까지 풍기며 낭랑한 목소리로 같이 온 친구에게 또랑또랑 읽어주었다.

"선생님 이 책 재미있는 책이에요!"

다희는 특별한 정보를 알려주는 듯 진지하게 말해 주었다. 이번엔 내가 보답을 할 차례이다.

"어떤 내용이길래 재미있어~?"

치매 걸린 할아버지와 사는 할머니가 쓰던 수건을 이제 버려야겠다며 정리하다가 수건에 적힌 할아버지와의 수많은 추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결국 수건을 버리지 않았고 할아버지도 웃었다는 내용이란다. 요 녀석 내용 요약이 제법이다. 나는 읽지 않은 이 그림책의 내용이 슬슬 궁금해진다.

"할아버지는 왜 웃었는데?"

"그야 소중한 추억이 떠올랐으니까 웃었지요~"

"할머니는 그 중요한 수건을 왜 버리려 했었는데?"

"낡아서요. 그런데 수건에 적힌 '첫돌, 운동회' 이런 글자를 읽으면서 까먹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거예요."

"아하~! 그럼 다희는 지금 그 많은 추억들의 한가운데 직접 서 있는 거네? 초등학교 입학, 도서관이용, 친구와 책 읽기 등등... 그런 거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까맣게 잊어버리면 어쩌지? 다희는 뭘 보고 다시 추억을 떠올릴래? 수건에 일일이 인쇄해 둘 수도 없고...?"

"허어얼! 꼭 적어놔야겠는데요~?! 저 적어둘 게 너무 많아요! 어디에 적을까요?"

"일기장 어때? 매일매일 모든 추억을 다 적어둘 수 있어~!"

"오~ 저 오늘부터 꼭 적을 거예요~!"

다희는 그림책 한 권을 더 빌려서 총총히 달려 나갔다. 오늘 또 한 녀석이 사서의 질문 번역기에 걸려들었다. 잠깐의 문답으로 그림책도, 다희도, 도서관도 반짝였다. 아... 기분이 뽀송하니 좋아진다~!

이미지 출처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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