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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Dec 29. 2023

출생의 비밀

연말연시입니다. 보통 적십자에~ 밀알에~ 기부를 많이 합니다. 며칠 전, 도와줄 사람도 많은데 하필 유기견 강아지들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완고하게 주장하던 학생에게 오늘의 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63일 / 허정윤 / 반달


바로 허정윤 작가님의 '63일'입니다. 이 책에서의 63은 무엇을 의미하는 숫자일까요? 모르면 그냥 숫자이고, 알면 무서운 이 표지는 63일을 톱니바퀴로 그려 놓았습니다. 표지에서 무표정한 인형처럼 서 있는 귀여운 강아지들은 컨베이어벨트 끝에서 수레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63일은 강아지의 임신기간입니다. 컵처럼 작고 귀여울수록, 특히 회색털이 인기 상품입니다.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원하는 색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고, 심지어 63일을 앞당기는 방법도 찾았습니다. 바로 일주일 전에 커터칼로 모견의 배를 째면 됩니다. 모견의 배에 난 구멍은 털을 겹쳐 지그재그로 대충 손바느질하면 간단합니다. 한꺼번에 여러 개를 찍어내듯 만들어서 지갑이 두둑 해 지면 생산자도, 소비자도 기쁩니다. 하지만 종종 턱이 어긋나는 등 불량이 생깁니다. 하자 제품은 상인에게 손해를 끼칩니다. 쓸모가 없으니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강아지는 기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끔찍할 것 같습니다. 





저희 아들도... 회색의 작은 강아지를 원했습니다. 펫공장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마침 딱 그렇게 작은 회색 강아지가 저희 집에 와서 가족이 된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3년전 충격에 휩싸였던 그날이 지금까지도 서늘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일까요? 작은 강아지의 목숨은 사람의 목숨에 비해 하찮은 것일까요? 인간은 노예를 사고팔지 말자며 노예해방 운동을 한 역사가 있습니다. 반려견이라고, 가족이라고 칭하면서도 돈을 주고 사고팔며 데려오는 이 작은 생명의 탄생비화를 우리는 좀 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생명조차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이는 냉정한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불편한 진실 앞에 마주서는 용기는 장착하고 살기를 바라는 사서의 바람을 그 완고한 학생은 눈치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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