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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May 12. 2024

그 시간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를 아니?

초등학교를 3,4년 다녀본 아이들은 유치원 다닐 때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삶을 대~충 가늠할 줄  알게 된다. 어려운 구구단도 외워야 하고, 지겨운 수업시간도 참아야 하고, 놀고 싶지만 학원도 가면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이번주는 도서관에서 가정의 달 맞이 그림책테라피 특강을 2회기 진행했다. 1~3학년 학생과 학부모님, 4~6학년 학생과 학부모님으로 나눠 부모님과 오붓한 그림책 대화 시간을 선물했다. 오늘은 고학년 팀에게 너희가 왜 그런 시간을 참고 견뎌야 하는지 이유는 알고 다니고 있냐고 물었다. 녀석들 제법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요, 수능을 봐야 하니까요,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요,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하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똑똑해져야 해요... 등등 판에 박힌 대답이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닌 대답을 듣는 어른들의 얼굴에 찜찜함이 묻어났다.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보자. 지금이 공부만 잘한다고, 좋은 대학 들어간다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이 보장되는 세상인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아니라고 대답하는 어른은 없었다.


좋은 어른이 되려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고 있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인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삶의 목표'라고도 하고 '꿈'이라고도 하고 '소명'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꿈을 물으면 직업을 답하고, 목표를 물으면 점수나 등수를 답하는 고정관념에 붙들린 아이들이기에 굳이 특강의 주제로 '삶의 소명'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들이밀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탕진하고 비루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뉴스를 흔히 접한다. 그들은 그 많은 돈이 생겼을 때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상상을 미리 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로또 맞은 사람들처럼 기회가 위기로 변질되거나 기회가 기회인 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시로 들여다 봐야 한다. '내 삶의 소명은 무엇일까?' 도통 서로에게 묻지 않는 그 질문, 스스로에게도 잘 물어보지 않는 그 질문을 그림책 4권으로 부모님과 함께 고민하며 아이들은 2시간 동안 진하게 깊어졌다.

 



1. 이보다 멋진 선물은 없어 / 패트릭 맥도넬 글그림/ 신현림 옮김 / 나는별/ 2016

지금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 이 순간이 특별한 선물임을 말해주고 싶었다. 전교생 356명에게 똑같이 안내문을 발송했지만 단 13명팀이 신청을 했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설문 해 본 결과 엄마와 단둘이 데이트 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아이들이 실제로 무척 받고싶어하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참여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부모님이 일하는 시간이라 안된다거나, 동생이 있기 때문에, 학원시간 때문에,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등등의 이유로 참여의 뜻이 좌절되었다. 그러니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앉아있는 너희들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이미 큰 선물을 받았음을 꼭 짚어 말 해 주었다. 부모님들은 자연스레 옆에 앉은 아이들의 두 손을 꼬옥 쥐고 쓰다듬으셨다.






2. 시간이 흐르면 /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글 마달레나 마토소 그림/ 이상희 옮김/ 그림책공작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고 달라지는 것에는 좋은것과 좋지 않은것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 까지 남는것은 사람이다. 어찌보면 그 어떤 관계보다 부모와 자식은 가장 가깝고 오래 갈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오래갈 친구와 사이가 좋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사이가 좋으려면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문답을 통해 엄마와 아이들은 서로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3.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 리처드 T. 모리스글,르웬 팜 그림 / 이상희옮김 / 소원나무 출판

곰의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모험은 좁은 세상을 살던 곰이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게 해 준다. 삶을 살아가며 겪는 모든 시도들이 강물에 뛰어드는 곰과 같다. 곰에게 강물에 빠져 모험을 하게되기 전의 세상과 후의 세상이 있었다면, 엄마에게도 두 개의 세상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과 너희가 태어난 후의 세상.


뚱한 얼굴로 앉아있던 J대뜸 '나 때문에 엄마가 너무 고생해서 힘든 세상이요...'라고 답한다. 피곤이 켜켜이 누적된 듯한 어머니의 얼굴에 수긍이 비쳤다.

"글쎄... 어머니 어떠세요? J 만나기 전의 세상이 좋으세요? J와 함께하는 세상이 좋으세요?"

어머니는 J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정답을 말 해 주셨다.

"J를 만나고 세상이 얼마나 더 아름다워졌는데요~! 저는 우리 J 없으면 안되요~"

부정적인 아이의 감정을 얼른 주워다 긍정으로 마무리 해 주었다. 모유를 끊기위해 첫 이유식을 하던날. 엄마는 또 새로운 강을 헤엄친 것임을. 너희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던 날, 지금 이렇게 잘 뛰어다니게 될 줄 엄마는 미처 몰랐음을. 처음 옹알옹알 ‘엄마’라고 말 하던 날, 너희가 이렇게 영어까지 배우고 있을 줄 몰랐다고. 너희도 잘 모르듯이, 엄마도 곰처럼 너희와의 모험에 대해 잘 몰랐을 뿐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몸인듯 지금까지 너희와 함께 강을 헤엄쳐 온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다만 초등학생이 된 후로는 이제 조금씩 엄마와 분리되어서 나만의 강물을 찾아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도 마찬가지로 점점 엄마만의 강을 찾아 도전 할 준비를 하고 있고, 여러분도 어엿한 청소년의 강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서로의 강을 건강하게 응원해 주자고 약속했다. 강의 의미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녀석들이 기특했다. 






4.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맥 바넷 글, 존 클라센 그림, 서남희 옮김 /시공주니어 /2014

 - 나는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두려워 하는지 잘 안다면 일상에서 소소한 성공경험치를 누적시킬 수 있다. 작은 성공경험은 자기효능감을 발휘하기 위한 필수재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해 냈을 때 우리는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샘과 데이브는 스스로 선택한 사명을 위해 서로 의지하며 땅을 팠다. 쓸데없어 보이는 삽질을 비웃거나 말리는 이는 없다. 지치고 힘들어도 쉬어갈뿐 탓하거나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어마어마하게 멋진것을 함께 경험한다.


지적 장애가 있는 K와 함께 참여했던 어머니는 지치고 힘들때 잠시 쉬어가자고 말해주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했다 말했다. 구경만 하는 고양이, 자기만의 정답이 확고한 강아지, 비전을 제시하는 데이브, 긍정으로 지지하는 샘. 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나는 어느때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지 들어다 볼 수 있다. 때로는 머뭇거리고, 때로는 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는 학원을 정해주는 자신이 강아지와 같아보인다 했다. 누구는 남편이 데이브같아서 감사하다 했다. 누구는 자신이 고양이처럼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했다. 누구는 자신에게 샘과 같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특강이 끝나고 참여한 팀들의 순화된 감정이 도서관을 가득 채웠다. 엄마와 사랑과 감사를 나누며 끌어안고 손을 꽉 잡는 모습에서 시작할 때 없었던 자신감과 행복이 감돌았다. 내 그릇에 행복이 찰방찰방 넘쳐야 옆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 줄 수 있다. 오늘 참여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선물받은 그림책을 나머지 가족들에게 읽어주지 않을 수 없을것이라는것을 나는 만퍼센트 확신한다.


내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지, 내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나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따위의 것을 발견하는 것은 살면서 수시로 부지런히 해야하는 작업이다. 그 번잡한 일을 그림책으로 쉬이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그림책이라는 좋은 도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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