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로운 이야기
처음 초등학교라는 곳에 출근해서 낯선 선생님들 틈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오그라든 어깨를 펴지 못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한 선생님이 눈에 띄었는데 나보다 15살이나 어린 26살 아가씨 상담선생님이었다. 경력 1년 차의 그녀는 나보다 1년 선배님인데도 나와 꼭 같은 어깨를 하고 있었다. 상담샘도 이 학교에 대해 잘 모르고 나도 이 학교에 대해 잘 몰랐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꼭 서로에게 먼저 물었다. 둘 중 누가 답을 알면 천만다행, 둘 다 답을 모르면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서 또 다행이라 마음에 위안 삼으며 함께 학교생활에 적응했다.
상담샘은 빵과 케이크를 좋아하고 김치는 새 김치만 좋아한다. 무안하면 자꾸 웃고, 어색하면 말이 많다. 먼지를 싫어하는 깔끔쟁이고 자동차에 대해 잘 안다. 남에게 피해 주느니 자기가 차라리 손해 보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소심쟁이이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운동은 싫어한다. 결혼식날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안경을 벗으면 더 아름답다. 함께 근무한 5년 동안 같이 먹은 급식의 횟수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니 15살이나 차이가 나건 말건 우리가 서로를 '우리'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상담샘이 내일 출근을 마지막으로 나를 두고 먼저 다른 학교로 떠나게 되었다. 상담샘이 학교에 적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봤었는데 이제 떠나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할 판이다. 이리 아쉬울 줄 알았으면 어른이랍시고 잔소리나 하지 말 것을... 소용없는 후회가 올라온다. 여하튼 새로운 곳으로 던져질 걱정에 스트레스가 극심한 나의 첫 학교, 첫 직장 동료를 특별히 응원해 주고 싶었다.
삶의 최종 목적지에서 바라본다면
지금의 고통은 신비한 계획 속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 걷는 독서 / 박노해 / 느린 걸음 / 2021 -
지금 생각해 보면 5년 전 90여명의 교직원 중 나와 같이 오그라든 어깨를 서로가 알아본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덕분에 슬플 때도 힘들 때도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인연인가! 분명 새 학교에도 상담샘과 결이 같은 소중한 인연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그들이 우리 상담선생님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눈에 띄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왕사탕 만한 보석이 똿 박힌 빽과 반짝이는 왕관, 화려한 귀걸이와 요술봉을 다이소에서 샀다. 장난감이지만 꽃다발과 함께 강제착용 시키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상담샘은 기겁을 했지만 역시! 그녀는 보석과 함께 빛이 났고 우리는 유쾌하게 들썩이며 웃었다. 사랑받은 사람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녀가 오늘 이 요란한 사랑의 기운과 빛을 가슴에 품고 새 학교에서 귀한 사람으로 자리 잡기를 기도한다.
"샘아~ 정말 고마웠고 사랑한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