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고양이 찻집 _ 박종진 글. 설찌 그림. 소원나무 출판
* 책 속 키워드
#편견 #태도 #열정 #취미의필요 #내조 #배려 #일의의미 #창업의무게
그림작가 설찌의 그림은 내내 다정하고 따뜻하다. 파스텔 톤의 포근한 색채와 섬세한 표현들이 아늑함을 준다. 그러나 온기 가득한 그림과 달리 스토리는 사실 냉엄한 퇴직자의 고뇌를 말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아직 무거운 짐을 척척 나를 수 있지만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좀 서글퍼졌다. 그런 남편이 타 주는 차를 음미하며 다정한 말을 건네는 할머니는 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응원에 덜컥 찻집을 개업한다. 그리고 텅 빈 자신의 가게 앞에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부부. 다행히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할아버지는 긍정적이다.
수많은 퇴직자들이 경험하는 과정이다. 원치 않는 퇴직과 떠밀리듯 시작하는 준비 안된 개업. 그리고 예정된 폐업과 함께 사라진 퇴직금. 현실은 그림책처럼 화목하지 않다. 다툼과 갈등으로 가정 내 불화가 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림책 속 할아버지는 주인공답게 대단한 사람이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아내와의 관계를 잘 꾸려왔고, 그 와중에 '차'라는 취미생활도 병행하고 있었으며, 손님 한 명 없는 가게에서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 긍정마인드까지.
심지어 온갖 메뉴를 다 선보여도 맛 한 번 보지 않는 까탈스러운 고양이 손님을 위해 성심을 다 하는 열정도 가지고 있다. 손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어쩌면 황혼의 퇴직은 이제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의 가까운 미래이기도 하다. 평생직장이 사라졌고, 수명은 길어진 마당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직업을 가져야 할지 알 수 없다. 물론 어린이들이 이 그림책을 읽으며 이 따위 생각을 하진 않을 테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는 우리는 다정한 포장지에 싸인 쓰라린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 그래서 더 자세히 할아버지의 재기를 응원하며 그의 성공담을 자세히 뜯어보게 된다. (미리 스포를 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할아버지는 고양이 진상손님의 입맛에 맞는 차를 개발하고 바이럴마케팅에 성공한다. 손님들로 붐비는 가게의 전경으로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모든 중년이 꿈꾸는 제2의 삶이다.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할머니다. 역경을 이겨내는데 응원이 필요하다면 딱 한 명의 다정함 만으로도 충분하다. 할아버지에게는 빨간 입술로 다정히 미소 지어 주는 할머니가 있었다. 물론 지난 세월 동안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잘했기에 둘의 관계가 돈독한 것이겠으나 여하튼, 나를 믿고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는 한 누구든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 수 있다. 많이도 필요 없다. 딱 한 사람. 당신은 정말 많은 누군가에게 그 딱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 '딱 한 사람'은 지금 죽으려던 사람도 너끈히 살릴 수 있는 숫자다.
두 번째는 여유이다.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생각난다.
대한민국의 가장들은 대부분 가족 먹여 살리느라 급급한 세상을 살아냈다. 간 쓸개 다 빼놓고 직장에 인생을 올인해도 자리보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치열함 속에서 젊은 날을 보낸 이들이다. 물론 그 역시 본인의 선택이었다 하면 할 말 없지만 가족과의 관계를 챙기지 못하고, 취미생활 따위의 호사를 누리지 못한 그들의 눈물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그림책 속 할아버지는 그 귀한 여유를 가진 자다. 퇴직 전에 이미 가족과 돈독했고 취미도 있었다. 드문 일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그림책에나 담길법한 이야기이고, 꿈같은 이야기라 아름답다.
세 번째는 태도이다. 다정한 할머니와 여유를 다 가졌어도 할아버지의 일관되게 성실하고 편견 없는 태도가 없었다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이야기 속 '고양이'는 단순히 입맛 까다로운 귀여운 인물이 아니다. 우리 삶에 두더지 게임처럼 등장하는 빌런이나, 진상이나, 잡상인이나, 고난이나, 행운의 다른 이름이다. 할아버지는 나와 다른 '고양이'를 편견 없이 대했다. 할아버지의 텅 빈 가게를 찾아온 딱 한 명의 고객이 하필 까다롭다. 내가 자랑하는 '차'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양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할아버지는 자신을 갈고닦는다.
고양이의 입맛을 탓하지도, 고양이를 내치지도, 자신의 한계를 한탄하지도, 사람과 고양이의 차이를 탓하지도 않았다. 변명 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거듭 시도하는 노력 끝에 단 한 명의 고객을 감동시켰다. 단 한 명의 진상고객이 할아버지의 편이 되는 순간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성실한 태도가 삶의 방향을 어떻게 바꿔주는지 보여준다.
고양이는 어떤 존재를 뜻하는 것일까? 느닷없이 다가오는 고양이과 같은 존재들은 생각하기에 따라 행운일 수도, 불청객일 수도 있다. 내 삶에 나타났던 고양이들을 떠올려보자.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가 그 결과를 결정지었을 것이다.
성공한 사업가 켈리최는 입사 면접을 볼 때 지원자가 택시 기사를 대하는 태도를 본다고 한다. 시카고 불스의 코치 필 잭슨은 새로운 선수나 팀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평가할 때, 사적인 식사 자리를 통해 그가 웨이터를 대하는 태도를 살펴본다고 한다.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인성을 평가하기 위함이다. 유명강사 김창옥은 배우자 될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그 사람의 가족을 만나 보라고 조언한다.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와 그들의 온도가 그대로 새로 만들 가족에게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례는 예의와 배려가 상황이나 지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일관된 인격과 태도의 중요성을 짚어주는 예이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미 할아버지의 편견 없고 성실한 태도는 지난 삶 속에서 그러했을 터이다. 그러한 직장생활을 보냈을 것이고, 그러한 인간관계를 맺어왔을 것이다. 여기에는 다정하고 배려 많은 할머니의 덕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러니 이런 아름다운 결말도 그럴듯하고, 노년까지 일관되게 그러한 사람은 드물기에 이 그림책은 꿈같이 몽실몽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