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졌네요~!

| 생명이 건네는 위로

by 느닷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코끝시린 북풍이 매섭게 부는 아침. 코트깃을 여미며 나서는 출근길에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휘이잉~ 휘이잉~’ 겨울바람에 박자맞춰 서로 부비대며 춤췄다. 이웃한 나무끼리 온기 나누는 절묘한 솜씨를 올려다 보느라 걸음이 절로 멈췄다. 문득 그리운 이가 떠올랐다. 사교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게도 그리운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바쁜 출근시간이지만 이런 감상적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잠시 짬을내어 전화를 걸었다. 아무 용무없는 내 전화를 받고 크큭… 코웃음 지을 그녀를 생각하니 내가 먼저 웃게 된다.

“쌤~ 출근 했어요? 중학생들은 방학인데 도서관에 많이 오나요? 도서관 건물이 따로 뚝 떨어져 있어서 춥지 않아요?”

어제 만난 듯 평범한 인사 몇마디로 벌써 마음이 푸근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안부를 주고받는 것은 서로의 안녕을 전하고 마음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일이다.


전화 통화 내내 그녀는 최근 자신의 도서관을 찾아온 길고양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까만 털이 탐스럽고 눈 주위의 얼룩무늬가 매력적인 이 길고양이는 최근 몰아닥친 한파를 피해 중년의 사서가 홀로 관리하는 2층건물의 도서관 출입문 앞에 임시거처를 마련한 모양이었다. 길고양이와 여러차례 눈빛을 교환하며 탐색전을 벌인 끝에 그녀는 물그릇을 대령하고, 고양이 전용 캔을 사다 나르는 집사가 되고 말았단다. 심지어 일요일에도 이 잘생긴 고양이가 걱정되어 사료를 들고 학교도서관을 찾아갔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즈음 나는 눈치채고 말았다!


“쌤~ 사랑에 빠졌네요~!”

분명했다. 지난달만 해도 갱년기라 컨디션은 떨어지고, 과중한 업무 탓에 출근 자체가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앓는 소리를 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생기에 넘쳤다. 사료를 깨끗이 핧아먹고 난 뒤 반짝이는 밥그릇을 도서관 출입문 앞에 당당하게 던져놓는다는 이 배짱 좋은 길고양이가 중년의 사서에게 사랑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고 정을 주면 사랑과 에너지가 싹트기 마련이다. 지친 내 친구를 나 대신 위로해 주고 있는 길고양이의 존재가 무척 고마웠다.

길고양이 덕분에 잊고 있었던 도서관 고양이에 관한 책이 생각났다.

듀이 / 비키 마이런, 브렛 위터 저 / 배유정 역 / 갤리온 / 2009년 출판


어느 추운 날 도서반납기 안에서 떨고 있던 아기 고양이를 발견한 사서는 고양이에게 ‘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듀이는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을 맞이하고 이용자들과 교감했다. 듀이가 죽는 날까지 도서관을 대표하는 핵심 마스코트로 활약했다는 미국 아이오와주 스펜서 공공도서관의 실화를 기록한 책이다.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정서에는 생소했고, 듀이가 특히 어린 이용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괭장히 인상 깊었다.







코로나 시국에 사람과의 접촉이 차단된 이들이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농장에 방문하여 돈을 내고 말과 포옹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생명은 스킨십만으로도 위로를 건네준다. 사람은 그렇다. 다른 생명과 같이 있고 싶어 한다. 내 것이 아닌 들숨과 날숨을 느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열리곤 한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고양이를 쓰다듬고, 고양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교감하는 순간을. 분명 당신의 지친 감정이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외국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종종 있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사서에게 곤혹스럽거나 아이들에게 굉장하거나 둘 다 이거나 그런 소란스러운 도서관이 될테니 말이다.


동물이나 벌레를 혐오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인간도 동물인데 자신 이외의 동물은 다 혐오하는 감정이라니, 분명 자연스럽지 않다. 길 건너에 작은 개울과 산책로를 두고 있는 글빛누리도서관에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 자주 방문한다. 모기, 파리, 무당벌레, 잠자리, 벌, 나비 등. 다리가 여러 개 이거나 날개가 달린 각종 이름 모를 곤충들이다. 개나 고양이, 토끼를 좋아한다던 아이들도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낯선 곤충들은 죽이려고 달려든다. 큰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고, 어른을 부르고, 휴지나 책 등 적당한 살상도구를 찾아 호기로운 사람의 손에 쥐여주며 등을 떠민다. 낯선 생명의 일상을 가만히 관찰하거나, 그 신비함에 감탄할 기회가 자주 있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


최근 들어 도서관의 역할은 다각도로 변하고 있다. 도서관은 더 이상 조용히 앉아 시험공부를 하고 문제집을 푸는 곳이 아니다. 책을 매개로 만나 다양한 타인과 교류하는 시간, 자신만의 속도로 휴식하고 감정을 다독이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지역공동체를 보살피는 곳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학교도서관 역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나는 잠시 스펜서 공공도서관과 같이 아이들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학교 도서관을 상상해 보았다. 아, 역시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도서관에서, 굳이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강아지를, 새를, 병아리를…. 다른 생명과 가까이서 사랑을 주고 받으며 건강한 에너지를 키워가는 아이들을 자꾸자꾸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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