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보내는 박수

ㅣ 새 날개를 달아보세요

by 느닷


41살에 늦깎이 신입 사서가 되던 첫 해였다. 사서연수회 강단에서 경륜과 자신감에서 발사되는 멋짐으로 청중을 휘어잡던 대선배님이 있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민한 카리스마에 홀딱 반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녀는 내가 사서가 되기 한참 전부터 이곳 사서들을 대표하고 노조를 끌어가며 공동체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어온 일등공신이다. 덕분에 말도 안 되게 열악했던 학교도서관 공무직 사서들의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고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서는 아무도 없다. 그 오랜 세월 묵묵히 안고왔을 책임과 희생을 두고 감히 감사하다 존경한다 따위의 표현은 어림도 없다.


오늘 그 선배님과 잠시 만났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두 달이 넘도록 온몸을 흔들어 대는 기침을 하는 가냘픈 어깨가 지쳐 보였다. 세월 앞에 장사 없는 것인지, 열악한 조직의 에너지가 뜨겁던 열정을 다 갉아먹어 버린 것인지... 그녀는 직책을 내려놓고 싶다 했다. 지금까지 어려운 자리에서 리더로서 너무 잘해왔기에 역설적으로 그녀를 대신할 만한 리더를 구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해만 더, 한해만 더 하며 등떠밀려 온 시간들을 지켜봤기에 응원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서운하고 지친 마음이 몸을 상하게 하고 있다 했다. 그럼에도 조직이 와해될까 걱정하는 마음에 쉬이 내려놓지 못하고 애 끓이는 퍼석한 그녀의 얼굴에 지난한 투쟁의 흔적들이 스쳤다.


이혼과 이사, 이직과 아이의 진학. 약속이라도 한듯 갑자기 쏟아져오는 인생의 과업이 나를 집어삼키던 때가 떠올랐다. 견뎌내야 할 끝없는 풍랑 앞에 선 나는 맞서 싸우기 보다 되려 무기력해 졌었다.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내가 아니었고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었다. 어디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허물어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려면 오늘의 나에게 먼저 집중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내야 할 내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알아낼 때 까지 매일 집 앞 강변을 달리고 또 달렸다. 삶은 때로 진흙탕 같아서 계획에 없던 구정물 속을 헤엄치게 만들지만 우주가 나를 위해 감춰둔 진주도 항상 그 속에 있었다. 우리는 삶의 다음 여정을 위해 두려움을 내려놓고 진흙탕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진주를 찾아내야 한다.


물론 선배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뭣도 아니지만.... 지금 잡고 있는 낡은 문을 닫고 돌아서면 분명 새로운 문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드렸다. 그만큼 성실히 발전하는 삶을 살아온 당신이란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동료도 선배의 내려놓음에 박수를 아낄 리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금까지 리더의 진두지휘 아래 운영해 왔던 투쟁의 방식은 옳았고 최선이었겠지만 앞으로도 꼭 같으란 법은 없다. 모두의 의견은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최선의 차선책을 찾을 것이다. 그다음의 숙제까지 선배에게 떠넘기는 것은 가혹한 처사이다. 나를 잃어가며 조직을 살리는 방법은 어떤 경우에도 옳을 수 없다. 또한 움켜쥔 주먹으로는 아무리 기다려도 답안지를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찰나이지만 나는 정확히 봤다. 선배가 나와 함께 새로운 문을 상상할 때 잠시 날개가 펄럭이듯 시원한 바람이 스쳤다. 사그라들던 열정이 엉뚱한 곳에서 까불거리며 그녀를 불러낸 것이 분명했다. 리더가 아닌 사서로서도 차고 넘치는 역량과 에너지를 가진 선배이다. 꼭 맞는 날개를 금새 발견할 터이다. 내 어줍잖은 소견에 그녀가 어디까지 동의했는지 알수 없지만. 내 상상은 벌써 선배의 선한 영향력이 어디에서 새롭게 펼쳐질지 기대하며 날아올랐다.


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 마음 챙김의 시 /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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