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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토끼 Mar 28. 2024

불안의 모양

불안정한 내 마음의 원리

‘너는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거야’

어떤 이별을 겪으면 이런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좋아하는 드라마 두편에 같은 대사가 나온다.

처음 들었을 때는 느낌은 '과한데?' 였지만 두번째 들었을 땐 나의 과거 이별을 생각하게 되었다. -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모두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이다.

작가는 도대체 어떤 이별을 겪거나 목격한 것일까.

과연 어떤 이별이 사형 선고와 같을까.     


‘이별이 사형선고라니...너무 오버 아닌가?’

여전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진 나의 이별들을 떠올렸다.


관계의 단절을 겪은 후에도 나는 멀쩡히 살아서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밥도 맛있게 먹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충격적인 이별 같은 건 드라마에나 있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고 과거의 단절된 경험들에서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다쳐버린 감정들은 쉽게 회복되기 어려웠다. 다음 관계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작은 마음을 더 잘게 잘라서 조금만 내어주었고 나는 그 작은 마음마저 돌려받고 싶어했다. 이 관계에서 생긴 결핍을 다음 관계에서 보상받고 싶어했고 늘 애정을 확인받고 싶어서 나를 사랑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서투름으로 설명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했던 나의 감정은 상대에게도 확신을 주지 못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마음보다 불안을 먼저 보았고 사랑보다는 서운함만 서로 주고 받다가 결국 단절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불안이 내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주 커다란 착각이었다. 용기를 내서 나의 불안을 조금 내보였을 때마다 그 관계는 더 불안해졌다. 조금 가까워지려고 노력해도 매번 드러나는 불안 때문에 상대가 알기 전에 내가 먼저 관계를 놓아버렸다. 나는 더 철저히 숨기고 모른척 했어야 했다. 그렇게 천천히 나의 마음은 불안에 잠식되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불안은 만능키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나의 불안함을 만질 수 있는 사람만이 내 마음을 열수 있다. 반대로 불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누군지 간에 그만큼의 거리만 유지한다. 그렇다면 나의 일생 과제는 만능키를 가진 사람을 기다리는 건가? 또는 불안이라는 결핍을 채우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평생 불안을 안고 살기로 하는건가? 의 문제를 푸는 것일까?


나는 그냥  불안한 모양의 사람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들을 오직 불안함만으로 채웠다면 후회밖에 남지 않았겠지만 다행히 나는 그 안에서 뿌리도 내리고 열매도 맺으며 계속 성장했다. 그래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불안으로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나는 버리지 않았고 어리고 어리석었지만 소중한 나의 마음으로 마주했다. 여기저기 흩어지고 생채기가 난 마음을 붙이고 기우기를 반복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시간들이 사실 그때 그 사람 또는 그 시절이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었던 ‘나’ 를 그리워 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불안함이 사라진 지금, 부디 사랑 또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우려는 모든 관계들을 삭제하고 나와 나의 감정을 먼저 배려하고 우선순위에 놓기로 매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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