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조금씩 무례하다

나도 가끔 무례하다

by 그림토끼

내 속도와 상관없이 달력은 12월로 점프해버렸다.

‘올해 뭘하고 뭘하지 않았나’ 를 생각해보자.


과거에 굳이 하지 않던 것들 중에 올해 처음 한 것들이 있다. 눈썹문신과 속눈썹펌.


눈썹문신은 아플 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맞는 눈썹모양으로 하고 있다고 스스로 설득했다. 문신을 하러가는 내마음만 꽤 비장했는데 막상 해보니 영구적인 것도 아닌 것이 꽤 아팠고 엄청난 짱구가 될까 불안했는데 생각보다 자연스러워서 결과적으로 만족했다.


속눈썹 펌은 이것도 파마라고 파마약 냄새가 많이 났고머리카락처럼 영양제도 바르고 있다. 바짝 말려 올라간속눈썹만큼 어깨도 조금 펴진 느낌인데 이정도면 자신감 값으로 충분하다. 언니와 친구에게 눈썹펌 일정을 공유했더니 심심한 반응이었는데 그들은 이미 정기적으로 속눈썹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없는 배신감. 나만 빼고 모두 속눈썹마저 관리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요즘에 조금 재밌는 건 헤어고데기 인데 잘 하지도 해보지도 않았던 고데기를 하느라 이미 몇번 지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고데기 할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채 그대로라서 어떻할거냐는 말이다. 이러다 곧 다이슨을 살지도 모른다.


이게 다 뭐라고 여기다 쓰고 있는 건지.


올해는 새로운 부서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졌다.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는 헤어졌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잘 먹고 더 잘웃는 얼굴이 되었다.


회사에서 매일 만나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빨리 가까워진 사이는 조금 조심스러운데 처음에는 새로워서 좋고 재밌는 모습만 보다가 생각보다 많이 가까워지면 분명히 단점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후배 직원에게 마음을 많이 줬다가 되려 상처받은 기억이 있어서 나는 직급과 나이에 맞지 않는 쫄보인 상태였다.


새로운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어린데 그래서 내가 그들이 편한가 싶기도 한데 마냥 편할 수만은 없는 것이 연장자 입장에서는 내가 뭔가 실수하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다.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실수했는데도 나의 나이와 직급 때문에 그들이 아무말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 예쁜 카페에 가서 놀자는 제안이 흔쾌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좀 의아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만 하고 말겠지'정도의 거리감에서 진짜 카페를 가버리게 되어 그들은 나의 친구가 되었다.

한번의 약속은 한번의 신뢰가 되었고 신뢰가 생기면 친구 아닌가. 심지어 그날 카페에서는 밥도 안먹고 카페에서만 5시간 이상 수다를 떨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모두 친구 범주에 들어가버렸다.


배가 고픈 채 집으로 갔었기 때문에 다음 만남에는 꼭 밥을 먹자는 약속도 지켜져버렸다. 그렇다면 더 확실하지. 그들과 나는 찐친.


그렇게 우리는 같이 일하는 사이에서 종종 밖에서 맛있는 걸 먹는 사이, 이야기 나누는게 재밌는 사이가 되어서 아주 기뻤다.


과거 다른 부서에서도 친구들이 생겼지만 자기 검열 없이 이렇게까지 대화가 재밌고 마음이 안정되는 사이가 있었던가.


그전까지 나의 친구들이 나쁘다기 보다 오랜 시간 만난만큼 가끔 무례하고 선을 넘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 각자 마이너스 포인트들을 적립해 온 와중에 이렇게 무해하고 웃기기만 한 친구들이 생겨버렸으니 나는 여기에 마음을 모두 주어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이 친구들에게도 마이너스 포인트가 적립되어버렸는데 그게 알고보면 별개 아니지만 약속은 신뢰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아주 조금 서운함이 남아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을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 피치 못하게 변경할 일이 생긴다면 미리 조율하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가끔 상대는 나와의 약속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당일에 취소한다던가 원래 있었던 약속을 잊었다던가 쉽게 다른 약속을 잡아버린다던가.) 적잖이 당황스럽고 그 상대에게 실망을 감출 수 없다. 다음부터 같은 사람과 약속은 조금 피하게 되지. 물론 상대는 눈치채지 못하게 나혼자 거리두기를 하는 식이다.


그날은 저녁에 같이 붕어빵을 먹기로 한 날이었는데

저녁이 되고 나가야 하는 타이밍이 되었을 때 붕어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저녁 배달을 시켜버린 것이다. 나는 그날 어차피 속도 안좋았고 붕어빵을

먹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오히려 잘된 입장인데도 한마디도 없이 붕어빵 약속이 무시되어버린 것이 서운했다.

실망의 크기는 기대와 비례하는 법. 실망이 반복되니까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점차 타인에게 기대를 하지않는 중이었다. 그러고보니 실망도 오랜만이네.


딱히 먹고 싶지도 읺았던 붕어빵을 먹지 않았다고 약속과 신뢰를 운운하는 나도 좀 재밌긴 한데 약속은 나만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다시 들게끔 하는 사건이었다.


붕어빵 따위 별일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인데 그들이 말도없이 옆팀과 저녁배달에 합류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화불량인 상태에서 붕어빵을 먹었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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