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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Jun 08. 2023

아카시아 향을 선물한 비온뒤 산책

산책은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 여유로움이 없는 나에게 산책이라는 말은 당장 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떠날 수 없는 마치 해외여행 같은 호화로운 단어였다.


그리고 몇 년 뒤 속 썩이는 자식 덕분에 산책이라는 이름을 핑계 삼아 매일 분노의 워킹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책은 여유로운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닌 바쁘거나 힘든 일상에서 여유를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여전히 산책은 나에게 여유보다는 걷는 다리로 분풀이라도 해야 되는 목적이 뚜렷한 것이었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비가 흠뻑 내린 다음날이었다. 차분한 공기와 맑게 개인 하늘이 무척 예쁜 날.

이른 아침 만사 제치고 말 그대로의 순수한 '산책'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집 앞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진한 흑갈색을 뽐내며 짙어진 땅에서 올라오는 흙향기

전날 물방울을 옴팡 껴안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풍겨 나는 나무향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장 좋아하는 아카시아 향까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맑은 하늘아래 수분을 담뿍 안고 있는 잎새사이  새어 나오는 그 싱그러운 향. 코끝에 바람처럼 아카시아향이 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이렇게 좋은 산책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많은 시간들을 급한 마음들로 흘려보내버린 바보 같음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살았어?'라고 나에게 되묻는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가 온 다음날 이면 무조건 산책먼저 하겠노라. 나와 약속했다. 그래 어렸을 때부터 5월에 피는 싱그러운 아카시아향을 참 좋아했지. 비 온 다음날 아카시아향을 맡으며 산책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바람, 코 끝으로 다가오는 아카시아 향에 무척 행복했던 5월이었다.

늘 5월은 부모로서, 자녀로서, 가족으로서 챙길 것 많아 머리 무거운 달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매년 5월이 정말 기다려질 것 같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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