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 Aug 24. 2023

나도 너 같은 딸이었을까

죽도록 미안해서  화가 났어.

살면서 꼭 풀고 싶기도, 결코 풀고 싶지도 않은 뜨거운 감자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중 하나가 "엄마"이야기다. 어릴 적 고생스럽게 사는 엄마를(박여사) 보며 누가 뭐라 알려주지 않았으나 본능적으로 나 때문이라 여겼다. 덕분에 어린 시절 늘 그늘진 죄책감을 갖고 자랐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홀로 낳아 기른 여자. 요즘말로 미혼모. 바로 박여사다. 직감이 맞았다. 그 고생길을 자처하게 만든 이가 바로 나라는 존재였다. 스스로 선택한 길은 아니었지만 죄책감의 굴레는 지금도 간혹 삶을 무겁게 할 때가 있다.


어린 딸은 마음과 다르게 엄마에게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할 줄 몰랐다. 딸이지만 무뚝뚝한 아이. 아무런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아이였다. 사는 게 숨차보여 나라도 짐을 얹지 말자 생각했다. 그래서 곁에서 숨만 쉬고 살았다.


딸을 낳아 기르다 보니  기억저편으로 미뤄두었던 박여사가 절로 생각났다. 요즘은 딸이 대세라며, 아들 둘은 목메달이라고 딸이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나에게도 딸은 있다. 하지만 무늬만 딸이다. 딸이라고 다 살갑고 애교 있고 그렇지 안 단말이다. 이 친구도 옆에서 숨만 쉬는 딸이다. 종알종알 말같이 생긴 걸 잘하지 않는다. 돈 필요할 때만 "어머니"라고 외마디를 외치는 그런 딸이다. @@ 뭐 이런 자식이 있나 싶을 때도. 지 정신인가 할 때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이런 딸도 피곤해 누워있으면  소리 없이 다가와 양쪽 검지를 뾰족이 세워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세리 누르며 아파도 참으라고 한다. 어깨도 주물러야 된다며 고문인지 뭔지 아무튼 나름 마사지 같은 걸 해주고 별다른 말없이 휙 나간다.  세상 제일 좋아하는 하리보 콜라맛젤리 한 봉지를 부여잡고 신나게 말강말강 씹고 있으면, 어느새 봉지를 낚아채고서는 집에 있는 젤리를 모두 불태워버리겠다. 고 기분 좋은 협박을 한다.

젤리 덕후 엄마를 둔 딸은 당뇨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철없던 사춘기시절 사는 게 답답해 보여 그렇지 않아도 고단했을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게 왜 나를 낳아서 이 고생을 하고 살아?"

"누가 그렇게 살라 그랬어? 내가 낳아달라 했냐고!"

" 애 지우고 다른 남자 만나서 새 출발 하면 됐잖아!"라고 시퍼런 핏대 세우며 눈을 바락일 때

"그럼 너는?" 짧고 묵직한 한마디가 귓전에 들어왔다.

"너도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길러봐라. 그래야 내 맘 알지"라고 하셨다.


살면서 문득문득 이 장면은 마음속 돌처럼 걸린다.

이제는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엄마 그때 그 말 정말 미안했어. 나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 같아 속상해 화가 치밀어 올랐어. 그리고 그토록 고생스러운 용기를 내준 덕분에 따뜻한 집에서 사는 게 죽도록 미안했거든.

딱 너 같은 딸 낳아 길러보라고 했는데. 무슨 복인지 나보다 훨씬 나은 딸 같아.


철이 들고 있는 중년의 딸은 이제야 후회한다.  

손이라도 슬쩍 한번 잡아줬다면 그때 그 젊은 박여사는 얼마나 힘이 났을까. 

그 흔한 안마도 실컷 못 해 드렸을까.






사진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한 빚잔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