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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Sep 14. 2023

그래도 용기 내는 뒷모습

고1이지만 9월 모평은 찍고 잔답니다.

고3에겐 더욱 중요한 입시의 척도가 될 수 있는 9월 모평(모의고사평가)이 끝났다. 고등자녀(사랑이)가 있는 관계로 모평날 평소보다 더 일찍 등교를 시켜야 했다. 내가 보는 시험도 아닌데 할 일 없이 마음만 분주하다. 고1도 이럴진대 고3이 되면 잘 버티고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마음이다.

(모든 수험생 엄빠님들 존경스럽습니다.)


시험날 평소보다 30분 일찍 등교하라는 학교공문이 왔다. 그에 맞춰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기도 다 날리지 못하고 달렸다. 그날 유독 차 안에서 아무 말이 없다. 나 또한 고요함을 깨지 않고 학교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리면서 짧게 한마디 한다. "오늘 기분이 별로예요. 그냥 찍고 잘 거예요" 이 말 한마디에 그동안 참고 참았던 복잡한 마음이 모두 폭발했다.


 마음 같아선 저렇게 시건방지게 말하는 것을 가만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엔나소시지처럼 뒤로 줄줄이 서 있는 차량들이 있어 재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가야 했다. 문이 닫히기 전 재빠르게 "반드시 풀어" 외마디를 외치고 출발했다.  


사랑이의 끊임없는 요구로 등하교를 시켜주는 중이다. 덕분에 매일 같이 등교한다. 거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오가며 영단어라도 외우면 그나마 지루하지 않을 거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천리길이라 힘들다며 자꾸 태워달라고 한다. 그 길을 오가며 공부 체력을 아껴 0.01점이라도 더 받았으면 좋겠다. 같은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이 시간에 얼굴 보고 일상의 대화를 하며 맛있는 걸 챙겨주자 생각했다.


중학교 때는 책과 담을 쌓았고 중3 겨울방학쯤부터 고1 올라가는 3월 전까지 대략 몇 개월 동안 독서실에 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1학기를 마치니 고기등급 매기듯 내신등급이 나왔다. 중학교를 건너뛴 거나 진배없는데 그 정도 등급이면 잘했다고 생각했다. (등급이 빼어나서가 아니라 살아온 과정에 비추어보면 말입니다.^^) 좀 더 열심히 했어야 된다고 말하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 열공한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내신이 나오고 사랑이는 좌절했다.

원하는 등급이 아니란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답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정시를 보겠다고 게거품을 한가득 물었다.  너무 잘했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고 토닥였으나 진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그 생각을 꺽지 않고 있다. 어떻게 도와 줄수도 없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정시를 보겠다는 놈이 모평을 찍고 잔다니.

생각이 정히 그렇다면 모평은 지데로 봐야 되는 거 아닌가. 저런 개소리를 하다니.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생각했다.


살면서 누구나 스스로 기대한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고. 그럴 땐 힘을 잃고 포기하거나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지금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다 헤아리기는 힘들지만.  축 처진 어깨로 무거운 가방을 지탱하며 다시 독서실로 들어가는 사랑이의 뒷모습이 유독 쓸쓸하고 지쳐 보여 눈물이 일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가장 용기 내는 뒷모습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를 먼저 알아야 속이 시원한 팩트에 입각해 생각하는 못된 버릇이 있는 엄마는  "남들 열공할 때 넌 안 했었잖아. 그러면서 어떻게 그 몇 달 잠깐 했다고 원하는 등급이 딱하고 나오길 바래" 말로 하진 않았지만 잠시 정 떨어진 생각을 했다. 참 이럴 땐 쓸데없이 논리적인 게 짜증 난다.


힘들고 어렵고 지쳐 포기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된다고 외치는 것이 무슨 위로가 됐을까. 위로라는 것을 한참 배워야겠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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