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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Sep 21. 2023

바보

어떻게 그걸 지금 알아요.

바보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사전적 의미 _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두 번째 세상적 의미 _바다의 보배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 들다 초등 아들에게 "바보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정확히 첫 번째 사전적 의미다. 바다의 보배였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인정이 너무 되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지 못한 날에는 어김없이 물어왔다.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화가 났어요?"

"아니야"

"안 좋아 보이는데. 왜 화가 났는지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괜찮다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묻는다. 답하는 게 피곤해 얼른 말을 하고 싶었으나.  기분이 안 좋은 건 알겠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어서 대충이라도 답을 하기 위해 계속 생각해야 했다. 생각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 보니 '아, 이래서 기분이 안 좋았구나'를 깨닫고 나서야 드디어 답을 할 수 있었다.

빨리 숙제를 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화가 났어요? 말하니까 어때요? 이렇게 말하면 별거 아닌데 왜 그렇게 표현을 안 해요. 앞으로는 그러지 마요" 심한 체기로 손을 바늘로 딸 때의 느낌이었다. 검붉은 피와 동시에 바늘에 대한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뭔가 뚫린 듯 시원함이 밀려오는 것 말이다. 말을 뱉고 나니 그런 속 시원함이 밀려왔다.


둘 사이 다툼이 있어 속상한 날에는 찾아와 꼭 두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가 좀 전에 그렇게 말한 것 때문에 마음이 너무 속상하고 아파요. 10분만 같이 보고 싶은 유튜브를 보자고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거 해야 된다고 혼자 보라고 하셨잖아요. 저건 좀 이따 해도 되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엄마에게 덜 소중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슬퍼요"


이해와 인정이 너무 되는 말에 순간 말을 잃고 꼼짝없이 미안하다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저렇게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표현 고자가 볼 때는 정말 경이로운 수준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게 너무 어렵기에 더욱 그렇다.





아주 아이였을 때부터 그때마다 떠오로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말을 닫았다. 그래서 감정은 맴돌지만 그걸 말로 잘 끄집어내지 못한다. 그런 맹추가 선택한 방법은 아니다. 싶으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거였다.

누군가 전혀 다르게 나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해도

말의 의도를 전혀 다르게 해석해 오해가 생겨도

상대에게 기분이 상해도 말 몇 마디면 될 것을  묵언수행으로 스스로를 방치했다.


태어나 말문이 트이고 나서부터 끊임없이 말로 나를 표현하도록 훈련시켜 준 아이는  

어느 날 저녁 또 갑자기 물었다.

"엄마는 언제부터 표현을 해야 되는구나. 필요하구나. 하고 알았어요?"

"너 태어나고부터 너에게 배웠어. 이 부분은 네가 선생님이야"

"아니 바보 아니에요? 나도 아는데 어른이 돼서 어떻게 그걸 지금 알아요?"너무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바보"라는 말에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둘이 깔깔대고 한참을 뒹굴었다.


계속 누르고 또 누르고만 있으면 모른다. 숨이 차 죽는다는 걸. 가만히 있으면 돌아오는 건 순하고 착하다. 말 잘 듣는다.라는 칭찬세례뿐이었다.

그러다 숨차서 끝까지 못 갈 수도 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나의 꼬마 선생님 덕분에 이제는 숨이 덜 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자꾸 입이 나풀거려서 걱정이다.


그날밤, 누군가에게 너무 쉬운 일이 또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타인을 세상이라는 것을 이해해 가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세상에는 엄마 같은 바보가 많구나"하고 잠이 들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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