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 Sep 28. 2023

그토록 싫은걸 매일아침 마주한다.

태어나고 3~4살쯤 아빠라는 사람이 찾아오고 이후 3대가 같이 살게 되었다고 들었다. 부모님의 결혼을 격렬히 반대했던 할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나고 몇 년 후에야 겨우 허락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쯤 나의 탄생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것을 알아버린 어린아이 눈에는 겨우 그런 이유로 모녀를 내팽개친 아빠가 당시에는 참 비겁하고 지질해 보였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지금도 '생일'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


우여곡절 끝에 3대가 함께 살게 되었고 10대가 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건 삼시 세 끼였다.

할아버지, 할머님이 계셨기에 배가 고프든 그렇지 않든 때 되면 끼니라는 것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어야 했다. 방학이라고 예외는 없다. 어김없이 7시에 아침식사는 시작된다. 매끼 자리를 함께 하지 않을 경우 꼬투리를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켠 할아버지가 애를 버릇없이 키운다고 3박 4일 온 집에 방송을 했다. 그렇게 엄마를 못살게 굴었기에 그 지겨운 식사자리를 한 끼도 거부할 수 없었다.


습관이 무섭다고 했던가. 유년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아침식사를 해야 하는 신체리듬이 생겨버렸다. 먹지 않는 날에는 배가 고파 오전일과를 지정신으로 소화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20대가 되니 더욱 발전하여 아침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거르는 건 상상할 수 없었고 새벽과 아침 경계에 일어나 늘 거하게 아침을 준비했다.


그렇게 40년 넘게 살아오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어떤 한의사의 '자연식이 이롭다'는 주제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특히 아침으로 말이다. 앞으로 보고 뒤로보고 돌려봐도 인정하긴 싫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싶었다. 아침을 자연식으로 2주 아니 딱 일주일만이라도 해보면 다르다고 했다. 생야채를 식사로 먹어본 적 없었고 굳이 먹기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당성이 되게 있어 보여 일단 해보기로 했다. 야채. 과일이라면 종류는 상관없으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영양가가 높은 것으로 야채 중에는 양배추, 과일 중엔 사과라고 추천했다.





그런데 양배추와 사과듣는 순간 에잇 하지 말까 했다. 물론 다른 야채. 과일로 대체해도 되지만 그래도 기왕 할 거면 그중 영양가가 더 좋다는 걸로 하고 싶은 욕망이 앞섰기에 양배추와 사과를 싫다는 이유로 무작정 놓을 수도 없었다. 무슨 욕심인지 모르겠다.


1년에 사과 한 알도 겨우 먹을까 말까 한다. 양상추는 몰라도 양배추는 장바구니에 들어올 일이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만큼 양배추, 사과는 그동안 전혀 찾지 않은 식재료였다. 어쩌다 곱고 탐나는 빨간색 마력에 빠져  사과 몇 알 사두고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2023년 올해가 시작되면서부터 잔치상이었던 아침식사를 조리가 필요 없는 아침 식사로 바꿨다.

처음에는 싫어하는 것을 그것도 두 가지나 같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 아주 곤욕스러웠다. 며칠 그렇게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하루는 양배추, 하루는 사과를 번갈아가며 먹었고 아침식사가 힘들어 슬픈 날에는 달달하고 따뜻한 빵을 섞어먹기도 했다. 그리고 점차 양배추와 사과를 합체하는 날이 늘어났고 6개월쯤 지나니 싫어하던 이두가지를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싫지도 않다. 아침을 자연식으로 하니 제일 좋은 건 속이 편안하다는 거다. 이런 풀떼기를 먹고 오전을 어찌 버티지라고 지레 겁먹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기분 좋은 가벼움이 찾아왔다. 지금은 양배추의 달달함과 사과의 상큼함을 느낄 수 있게 됐다. 그토록 싫어하던 것을 지금껏 살아오면서 먹었던 양보다 올 한 해 동안 먹은 양이 훨씬 많다.


그런 여느 날 아침 그 맛을 느끼고 있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픽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참 사람일은 모를 일이다.는 생각에서다.

산다는 건 앞을 알 수없어 불안할 때도 있지만 생각지 못한 변화가 남은 삶에 또 기대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토록 싫어하던 양배추와 사과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이렇게 많이 먹게 될지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사진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바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