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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Feb 28. 2024

나 진짜 간다

강제로 한 효도, 그래도 가슴은 꾀나 아프네요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싶을 만큼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었다. 바로 남편과 아들이 다소 긴 일정으로 미국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한참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계획을 세웠고 1년 전 비행기표를 끊어뒀다. 이들이 커가면서 가장 좋은 때를 호시탐탐 노렸다. 이런 기회는 시간이나 비용적인 면에서도 시시 때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심사숙고했다.


그 당시 사랑이는 고등학생이 되어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함께 가자 누누이 설득했지만 안 가겠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땅 치고 후회하지만 말이다. ^^)

그 덕에 엄마인 나는 사랑이 옆을 지키기로 했다.


이런 시간이 결혼하고 처음이라 여행보다 앞으로 주워질 나만의 시간에 마구 설레었다. 온갖 계획을 세우고 자유롭게 날개를 펴리라 했다. 두근대는 시간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 사랑이가 뜬금없이 외할아버지께 전화를 한다.


"할아버지, 아빠랑 동생이 여행 가는데요. 엄마랑 저 둘이만 있어야 돼서 무서워요. 할머니와 함께 우리 집에 같이 계시면 안 될까요?"  화들짝 놀라 거실로 뛰쳐나왔지만  말리기엔 늦어버렸다.

"그래 가마"라는 설레고 명쾌한 아빠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이게 무슨 분탕질이란 말인가.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를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게 하다니. 짜증이 솟구쳤다. 누군가는 친정부모를 생각하면 봄날 같은 햇살과 안락함, 편안함 뭐 이런 것들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친정부모님 특히, 아빠는 그렇게 편안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부모님은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숙명에 어린 나를 씻기고 재우기 바빴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집을 떠나 기숙생활을 했기에 부모님과 함께 한 세월은 고작 16년 정도다.


그마저도 종일 얼굴 맞대고 시간을 보내본 적은

없었다. 온종일 함께 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 꼼짝없이 몇 날 며칠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눈앞이 깜깜했다.


통화가 끝난 사랑이에게 눈을 흘겼다. "엄마가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린 거예요. 부모님과 함께 하면 얼마나 좋아요"라고 속 모른 말을 한다. 그렇게 부자가 출국한 날 부모님은 도착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늙어버렸다는 이유로 용기 잃어버린 부모의 모습을 매 순간 마주하기 시작했다.

자식 귀찮을까 말하지 않고 참아왔던 것들이 하나 둘 발견됐다. 그때마다 도대체 왜 그러냐며 진작 말하면 될 것을 답답하게 사느냐며 잔소리를 부어댔다.


 저 구석진 곳 안쓰럽고 죄송한 마음을 짜증으로 표출하는 내가 아주 미웠다. 그래도 이 고질병은 잘 고쳐지지 않아 속을 태웠다. 기타 등등의 불편함을 해결해 드리는 사이 어느덧 다시 헤어져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부모님이 가시던 그날 아침 문득

'이런 기회가 또 찾아올까.'

'이것이 마지막이면 어떻 하지.'

'좀 더 잘해드릴걸.'

 '좋게 말할걸.' 후회와 반성이 몰려왔다. 지 성질 못 이겨 짜증 내고 나면 이렇게 아플 거면서 왜 그랬어.라고 스스로 질책도 해본다.


자의로 만든 기회는 아니었지만 사랑이 말이 맞았다. 부모, 자식으로 연을 맺었지만 이렇게 서로 마주하고 삼시 세끼를 꼬박 먹어본 날들은 처음이었다. 그 속에서 부모님은 분명 많이 웃고 있었다.


기차역까지 모셔다 드리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린다. "나 진짜 간다." 아빠의 짧은 한마디가 귓전에 울렸다. 이 말이 이토록 미어지는 말인지 전화를 끊고 알았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담뿍 묻어났다. 당신도 분명 '이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목소리였다.

다음이라는 기회가 오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그때는 헤어져도 덜 아쉽고, 덜 그리울 수 있을까.


그날 저녁 사랑이가 식사를 하던 중 외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던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립다 말한다. 애써 누르고 있던 허전함과 그리운 마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한참 그 자리를 바라봤다.


시간에 힘으로 갈수록 노쇄해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도 꾀나 가슴이 아픈 일임을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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