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 Mar 06. 2024

모든 너를 응원해

 

"놔버려. 죽 든 살든 그 손을 놔. 학교 갈 놈은 가지 마라 해도 가고 안 갈 놈은 결국 안 가"

정확히 1년 전 들었던 시원한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네가 그렇게 못할걸 알았어.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그때는 내 귀에 들리지 않았을 거야."라고 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놓질 못하고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사랑이는 결국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그럼 이제 그 길도 믿고 응원해 주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머리로는 백번 천 번 알겠으나 가슴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거지 하는 등뒤로 한참을 서성이던 사랑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서 죄송해요. 평균적인 선택이면 좋은데,,"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미안함이 담겨있는 목소리다.


'평균적인 선택'이라는 말이 뜨끔했다. 누가 저 아이에게 평균적이란 개념을 심어주었을까. 남과 다른 선택을 했다고 미안하게 했을까. 그 사람이 바로 나 같았기 때문에 화가 났다. 남들처럼 안 산다고 그걸 사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평균적인 건 없어. 다만 너에게 맞는 선택을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네가 무엇을 어떤 길을 가든 응원하겠다는 생각이 진짜 마음으로 들어왔다.


자기 생각이 강한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로서 좀 더 힘들다. 매일 스스로를 내려놔야 되는 일이라 그렇다. 어떻게 생겨먹은 게 번번이 저리 독특할까. 왜 이리 속을 태우나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평균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이의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자칫 방관처럼 보일 수 있는 그런 수더분한 응원을 받으며 자랐다. 덕분에 커가면서 선택의 폭은 넓어졌고 하고자 하는 길로 걸어갔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기에 자립심은 자동으로 길러졌던 것 같다. 분명 어렸을 적 친구는 그 당시 굉장히 독립적인 아이로 나를 기억했다.


부모님은 매일이 치열했기에 나에게 관여할만한 에너지가 없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신기했던 건 뭘 하든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셨다.


초등학교 때 담임이 심심하면 여자애들을 자기 무릎에 앉혔다. 그걸 지켜보는 아이들은 모두 알았다.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하는지 하지만 무서워 누구도 말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무릎에 앉게 되었고 기분이 더러웠던 그날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아빠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음날 바로 교장실을 찾아가 엎어놓았다. 이후 작은 시골학교의 그 추잡스러운 선생은 못된 손을 다시 놀리지 않았다. 그리고 곧 떠났다.


매일 아침 짓궂은 남자애가 별명을 부르며 놀려대 한 달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이번엔 할머니가 그 집 할머니와 맞짱을 뜨고 오셨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그 머슴아는 찾아와 바로 사과했다.


정작 나에게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를 묻지 않았다. 그냥 믿어주었다. 이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믿음을 배신하기는 힘들었는지 책임지는 어른으로 일찍 자랐다.


부모가 된 지 한참인데 이런 믿음을 사랑이에게 주었던가. 난 내 부모만큼 자식에 대한 믿음도 배포도 없는 쭈구리 같았다. 맘 편하자고 움켜쥐고 있는 머저리 말이다.  


이제 손을 놓고 양 손바닥을 부딪쳐 힘찬 응원을 보내야겠다. 이맘 먹기가 이리 힘든걸 보니 요즘 애들 뭐랄 것 없이 나 또한 나약한 부모였다.



*출처가 표기되지 않은 이미지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진짜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