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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Apr 03. 2024

학원도 안 다녀본 엄마는

토요일 오전 쨍한 봄날. 학원이 즐비한 거리에 따뜻한 바닐라라테를 마시기 위해 카페로 들어왔다. 학원가답게 빈시간에 잠시 들린 학생들이 각종 문제집을 펴놓고 열심히 듣거나 풀고 있다.


그리고 나처럼 학원 레테(레벨테스트)를 들여보내놓고 대기하는 엄마. 또는 그 부모들. 그게 뭐라고 편치 못한 표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내 얼굴도 저들과 다르지 않겠지라는 생각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1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 걷기를 하려 했지만 황사가 찾아와 무작정 돌아다닐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 욕심내려 놓고 오랜만에 맘 편히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자 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펼쳐진 광경은 나에게 없던 긴장과 걱정거리를 덜커덕 안겨주었다.


여기저기 열공하는 학생들 사이에  "이번에는 꼭 레테 합격해야 해.  이번에도 못 보면 넌 거기 결국 못 가고 00등급이야." 아이를 붙잡고 열심히 말하고 있는 엄마 그리고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아빠가 있다.


옆에 또 다른 엄마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고 있다. 그걸 마주한 작은 꼬마는 학원 가기 전 밀린 숙제를 커다란 눈을 굴리며 열심히 하고 있다.


다들 이렇게 사니 너도 이렇게 하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생각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살라고 해야 할까. 그렇잖아도 심란한 마음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제길 레테는 왜 보러 와서는 결과가 좋든 싫든 거기에 맞는 잔소리들을 쏟을 것 같아 불안해졌다.




엄마는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그 흔한 피아노학도 말이다. 그래서 학원에 득, 실을 모른다. 덕분에 레테가 주는 긴장감에 감도 없고 아이들이 학원에 꼭 다녀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각자 스타일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는 주의. 하지만 조그만 공부방이든 학원이든 부득이 보내야 되는 상황이면 발품을 팔아 분위기를 익히고 선택한다.


지금까지는 즐거운 어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이제 초6이다. 마냥 즐겁게만 할 수 없기에 옮겨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아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학원 옮기는 걸 생각해 보겠다 한다. 어쩌다 철든 아이와 서로 마음이 맞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인강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인강을 알아보고 체험도 해봤지만  아직 의지도 엉덩이도 너무 가볍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그건 좀 더 큰 다음에 하자고 했다.


여느 주말 마음먹고 운동화 질끈 묶고 학원가를 돌아다니며 영어학원 리스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손가락하나면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 그리고 여기저기 물어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맞는 곳은 또 다른 문제라 생각되었고 인터넷에 거론되지 않은 숨은 보석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갖었다. 그중 몇 군데를 추려 전화상담을 시작했다.




A학원.  "아이가 기존에 어디를 다녔죠?" 

"ㅇㅇ어학원이요." 피식 웃는 숨소리가 들려버렸다. 그 숨소리로 모든 걸 알아들었고 그런 곳은 받는다 해도 보낼 생각이 없었다.

저희는 외고, 국제고등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초등부가 없습니다. 3월 중. 고등부시험이  끝나고 초등부 개설을  논의할 예정이었는데 개설확정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중. 고등부 내신에 집중하는 학원 같은데 개설되더라도 퍽이나 초등에 신경 써주겠냐 싶어 지웠다.


B학원. 여기는 개인이 하는 곳으로 연락처가 나와있지 않아 찾는데 애를 좀먹었다. 겨우 알아낸 연락처로 문의하니 "애가 몇 학년 이세요?" "초6인데요." "저는 중3부터만 수업합니다. 소개받으셨나요?" 이두마디에 몇 년 뒤 보낼 곳으로 찜했다. 가르치는 학년 기준이 명확한 곳이 좋다.


C학원. 레테가 다소 어려울 수 있고 관리가 타이트하다 했던 곳이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꽝이라 고민이 됐다. 여기까지 아니면 다시 또 추려야 하는데 것도 머리가 아파왔다.

학원레테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다소 겁 없는 학부모라 레테보다는 괜히 봤다 아이가 상처만 받는 게 아닐지 걱정되었다.

"원장님, 레테가 어렵다는 말이 있던데 괜히 봤다 애가 상처받을까 봐요. 성실한 아이니 좀 쉽게 내주시면 안 돼요?" 엄마는 질렀고 원장님은 당황했다.

"아아, 그래요. 그래도 한번 봐보세요. 안 다니시더라도 체크해 드릴 수 있어요." 기운이 밝았다.

"반도 세분화 되어 있고 그리고 저희는 중등부와 초등부를 섞지 않습니다" 이후 수업하는 동영상도 보내주셨다. 여전히 고민됐으나 우선 예약했다.


그 C학원에 애를 들여보내놓고 카페에 잠시 들른 거였다. 어디든 처음 가는 곳은 언제나 무척 힘들어하는 아이는 학원을 바꿔볼까 용기를 냈다. 하지만 어깨는 잔뜩 움츠려 들고 얼굴은 흙빛이다.


학원으로 가는 길 내내 이런저런 우스개소리하며 긴장 풀어주려 했지만 녹록지 않아 보인다. "ㅇㅇ아  학원 레테는 그냥 그들만의 기준이야. 걱정하지 마. 어려운 문제도 있도 쉬운 문제도 있고 섞여있을 건데 어려운 거 나왔다고 긴장 말고 모르겠는 건 그냥 찍어도 돼. 풀 수 있는 것만 풀어도 충분해" 학원문을 여는 순간 주말이라 큰 형아들이 바글바글. 아이는 더 얼었다.


드디어 끝났다고 전화가 왔다. 아이와 같이 상담실에 들어오라 한다. 휴, 그럼 된 거다. 엄마는 한숨 돌리며 오늘의 경험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런 모험을 앞으로도 계속할지는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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