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쨍하고 비춰 수분이 날아가고 말라가는 그런 날이 아주 여러 날 지속되어야 당도 높은 과육이만들어진다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 목마를 때 물을 바로 먹을 수 있는 사람보다는 물이 부족해 참고 견디다 겨우 목을 축인 이가 더 밀도 높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녀 교육에도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했다. 결핍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건지 알면서 자식이 더 당도 높은 과일이 되길 바라며 자의적으로 결핍을 만들어 내곤 했다.
거기다 태어날 때부터 결핍종합세트를 갖고 세상에 나온 남자가 하필 나에게 날아왔고. 그 뾰족함에 찔리고 나서도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여전히 결핍은 필요하다 했다.
더럽게 없는 집에 태어나 정서적인 보살핌마저 받지 못한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음식 남기는 것이다. 물론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부득이 남는다면 버려야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하지만 결핍왕은(남편) 내 몸에 버리자는 주의다. 그렇게 꾸역꾸역 먹다 배탈이 나기도 한다.
건강에 도움 될 것 하나 없는 그 못된 버릇을 생각하면 세상 똥멍청이 같다. 병원비와 약값 그리고 그 때문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한참 밑지는 일이다. 하지만 결핍으로 인한 그 병은 아직도 힘들다.
지켜보기 안타까울 때가 많다. 더구나 그 문제가 나와 내 자식에게 번질 때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소리친다.
얼마 전 둘째가 저녁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덕분에 결핍왕은 발짝이 도졌다.
"음식 귀한 줄 모르고 밥을 남기면 어떻게 해. 다 못 먹을 것 같으면 처음부터 덜어놓고 먹든가. 식습관이 이렇게 잡히면 나중에 군대 가서도 고생이고 사회생활에도 지장 있어" 또 지 결핍을 가족에게 강조하느라 애쓴다 싶었다. 한편으론 얼마나 못 먹고살았으면 저렇게 음식 남기는 것에 예민한 건지 못나 보일 때도 불쌍할 때도 있다.
"군대는 안 가봐서 모르겠고, 사회생활에 무슨 지장이 있어. 요즘 식사하는데 밥 남긴다 뭐라 하는 상사나 동료가 있어? 그건 동의할 수 없네" 답답한 마음을 숨기고 나름 차분하게 말하려 애쓴 거다.
"사람은 결핍이 있어야 해. 부족한 게 있어야 필요를 느끼고 뭐든 더 하려고 하지. 성공한 사람들 봐 대부분 어떤 부분에 결핍이 있어. 그렇게 해야 성공한다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어. 그런데 요즘 생각은 달라. 당신도 나도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야. 그거에 대한 장점도 분명 있지. 하지만 갈고리처럼 뾰족한 게 발현될 때 그만큼 꼴불견도 없어.
성공? 그 사람들이 성공하고 난다음에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 행복했을까. 결핍이 주는 힘으로 쏘아 올려 끝까지 가볼 수는 있겠지. 그런데 그다음은. 결핍이 많은 사람은 모가 나있어. 자기의 결핍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때도 많아.
나는 말이야 애들이 둥글둥글 매끈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당신은 스스로의 결핍으로 음식 남기는 문제에 있어 지나치게 예민해. 물론 맞지. 그렇지만 그 기준이 너무 빡빡해. 당신의 잣대로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가끔 밥 먹을 때 체할 것 같아 짜증 날 때 있어. 애들이 크면 당신이랑 식사 안 하고 싶을 수도 있다"
너무 솔직했나 싶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답답한 마음에 그만하라고 소리만 질렀던 때보다 속이 더 후련했다. 결핍은 그 사람의 아픈 부분이라 생각해 되도록 건드리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여기저기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그 사람의 지뢰는 늘 불편하고 힘들었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 싶으면 듣지도 않고 고개부터 도리도리 저어대던 사람이었다. 의견차이가 있어 감정이 상하는 단계까지 오면 저 인간과 소통이란 걸 할 건지 말건지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노력해도 결국 소통이 안될 거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노력하고 억울하기 싫었다.
그런데 지난 시간 동안 나의 결핍을 마주한 시간들이 많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나니 스스로에게 편안해졌다. 그래서 남편의 결핍도 용기 내 마주하고 꺼내기로 했다.
"그래 내가 그런 부분 있어. 하지만 음식은 안 남기도록 했으면 좋겠어"도리도리박사 결핍왕은 자신의 결핍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자주 마주하다 보면 저 사람도 언젠가는 결핍으로부터 좀 더 편안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