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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봉봉 Aug 26. 2019

<도도봉봉X싸이월드> 싸이월드가 독립출판과 손잡은 이유

<도도봉봉X싸이월드>  독립출판 프로젝트 '싸이월드 감성'이 나오기까지

아직도 싸이월드가 있어요?

싸이월드 본사를 찾아간다고 말했더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물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이뤄지면서 PC기반의 서비스 싸이월드의 자리가 위태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일평균 이용자수에서 페이스북의 전세 역전도 이 무렵이다. 많이들 잊혀진 서비스라고 말하지만, 1800만 명이 드나들던 사랑방이 사라지는 건 여간한 젠트리피케이션 보다 더 충격일 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싸이월드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서비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업 상황이 좋진 않다고 한다. 여전히 막대한 서버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업을 접기로 마음먹는다면, 그 안에 있는 기억들은 증발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싸이월드를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싸이월드 감성'을 주제로 싸이월드의 전성기이던 2003~2011년의 독특한 시대적 분위기를 독립출판물의 형태로 아키이빙해보고 싶어서였다. 당시의 분위기는 싸이월드와 뗄래야 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국민의 일기장이기도 했고, 교류의 장이기도 했다.


싸이월드에서 통용되던 독특한 글쓰기 방식과 정서는 무엇이었을까. 왜 모두들 그 시절의 의미를 쉽게 흑역사라고 넘겨버리는 걸까. 아무도 기록할 만한 문화적 현상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안의 독특한 감성은 흑역사라고 단순화하기엔, 너무나도 보편적인 감각이자 트렌드였다. 현상을 온당하게 평가하고 그것을 발굴해 기록한다는 것.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아 이름을 붙여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다.


미니룸, 미니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들어보고 당시 가장 많이 팔리던 음원들을 전달받아 리스트업하고자 했다. 그때 싸이월드에서 유행했던 감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도 궁금했다. 이런 것들을 취재하고 자료를 요청하려면 싸이월드의 협조가 필수였다.

싸이월드 미니미 개발 당시 최초 이미지 시안. 외주업체에 맡긴 디자인으로 귀여움을 강조한 B안으로 결정됐다.  
싸이월드가 전해준 호의..."우리도 그 시절을 돌려드리고 싶었어요"


IT업계에 있는 지인들을 수소문한 끝에 싸이월드 직원의 전화번호를 구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퇴사한 상태였다. 머리를 긁적이는데 그쪽에서 "혹시 그대로일진 모르겠는데..."라며 회사 직통번호와 이메일을 전달해줬다."회사 입장에선 협조할 의무는 없겠지만, 물어볼 순 있겠죠" 그가 재미있는 기획이라며 응원한다고 했다.


사실 싸이월드 입장에선 딱히 돈이 되는 기획도 아닐 테니, 거부할 수도 있을 제안이었다. 이미지를 취합하고 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은 어쨌든 공이 드는 작업이기도 했다. 싸이월드 측에서도 누가 담당자인지 몰라 혼란한 듯했다. 마케팅 담당자는 내가 전화로 전달하는 용건을 한참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일단 만나보시죠."


나는 기뻐서 언제든 가능할 때 최대한 빨리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날짜를 잡았다. 싸이월드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해 있었다. 올림픽공원 근처였다.

싸이월드의 마케팅 책임자가 미팅에 나왔다. 나는 도도봉봉이 어떤 서점이고,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해서 밝혔다. 사실 독립서점과 독립출판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 싶었다.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가 무뚝뚝한 표정이어서 나도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그가 말했다.


"위에서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당연히 그러셔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곧 연락드리죠"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컸다. 며칠 뒤 그에게서 이메일 연락이 왔다. 내가 요청했던 이미지들과 함께 좋은 책을 만들어달라는 당부였다. 정말이지 펄쩍 뛸 것처럼 기뻤다. 싸이월드 전제완 대표가 보고받고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전 대표 자신이 출판을 통해 명성을 얻은 경영인이다. 삼성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 그룹웨어 개발 업무를 진두지휘한 이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 컴퓨터 입문서를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든 경험이 있다. 아카이빙과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허락했다고 했다.

마케팅 담당자 또한 독립출판과 인디 문화에 대한 관심을 그제야 보였다. 알고보니, 아내분이 콘텐츠 관련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데, 젊은층에서 독립출판+독립서점이 유행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쓴 이 분야 전문가였다. 그는 나를 보면서 정말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하며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역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의사결정 체계를 따르다보니 바로 결정해주진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다는 점에 감격했다.


싸이월드의 호의 덕분에 취재와 아카이빙 과정은 좀 더 수월해졌다. 싸이월드의 지원을 받는 만큼, 정말 좋은 책을 만들어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도 커졌다.


독립출판은 어려워...우여곡절 끝에 크라우드 펀딩까지


원고는 도도봉봉 팀의 취재를 통해 자체적으로 작성하는 한편 서브컬쳐 비평가인 손지상 작가의 외부기고를 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싸이월드 초창기 기획자에게 인터뷰를 받는 등 여러 방면에서 자료를 모았다. 당시 싸이월드 미니미에 적은 일기 같은 것도 에세이의 형태로 가공해 실었다. 2018년 10월부터 시작한 작업은 이듬해 4월에 마무리했다. 목차 등 대개 얼개는 나왔던 시점이다.

그러나 한번도 해보지 않은 독립출판물 출판 작업을 너무 만만히 봤던 것일까. 수월하게 생각했던 디자인 작업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해야 보기 좋을지, 우왕좌왕하다 보니 디자이너만 괴롭히고 말았다. 게다가 출판 과정에 있어서 책은 얼마나 뽑아야 할지, 종이는 무엇을 할지 몰라서 골치를 썩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당시 자료를 쓰는 데 있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당시 대중문화와 싸이월드 감성의 핵심 키워드는 음원 가사인데, 이를 사용하는 절차를 잘 몰라서 어려움을 겪었다. 음악저작권협회에 연락했더니, 홈페이지에서 어떻게 등록하는지 설명해줬다. 이 절차가 복잡한 편이어서 꽤 시간을 잡아 먹었다.


유행어나 짧은 문구 등은 저작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써도 좋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는데, 문제는 싸이월드 감성의 근간을 이루던 인터넷 소설의 문장을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는 우리가 비슷한 감성을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직접 인터넷 소설을 비틀어 쓰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 역시 적지 않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순차적으로 해결해나갔다. 노련한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긴 덕분에 내가 요청한 것보다 더 깔끔한 디자인이 나왔고, 만족감을 느꼈다. 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텀블벅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디자이너와 나 봉봉 그리고 도도가 함께하는 회의에서 나왔다. 이후 텀블벅크라우드 펀딩(tumblbug.com/emotionsoncyworld?utm_medium=api_search)을 진행했다. 이 일정이 마무리 된 뒤엔 도도봉봉에서 책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돌이켜보니, 작은 서점이 이렇게 무턱대고 일을 벌일 수 있었나 싶다. 기획 하나만 달랑 들고가서 성사한 <싸이월드X도도봉봉> 프로젝트였다.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변엔 호의로 가득찬 사람들,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알게 된 점도 큰 소득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이렇게 한 발 더 내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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