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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Nov 26. 2019

죽음이란 단어에 대처하는 자세

의연해질 수 없는 그 단어 앞에서


진지하게 죽음을 고민해본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다. 한 번은 이십 대 중반, 그리고 멀지 않은 과거에. 


사는 것이 큰 의미가 없고 앞으로의 일이 별로 궁금하지 않은 시간 속이었을 것이다. 삶을 내동댕이치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힘들었던 시간들을 굳이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없어진 이유가 되었으니까. 


우리에게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정을 하고 어떻게 그 시간을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동생과 생각을 나눈 적이 있었다. 사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고 감사하다는 동생은 자신에게 펼쳐질 매일이 기대가 되고, 몇 년 후의 자신의 모습과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가 너무 궁금할 것 같다고 한다. 에너제틱한 스물 후반의 녀석은 언제나 삶의 의지가 충만해서 꼭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등 뒤로 집채만 한 쓰나미가 몰려온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기 위해 죽어라 뛸 것이라 말을 한다. 


그에 반하여 나는 (만약에) 시한부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그날로부터 삶을 하루빨리 정리하며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이라 했다. 또한 절대 다음 생은 일어나지 않도록 빌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물론 동생이 어떻게든 도망치려 하는 쓰나미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굳이 힘을 빼지 않고 순수히 바닷물에 휩쓸려가겠노라고 말했다. 


삶에 애착이라고는 전혀 없는 허무한 나의 대답에 동생은 왜 그렇게까지 놓기만 하려는지 궁금해했다. 나의 대답은 '글쎄....'일 뿐 뾰족한 답은 없다. 실제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실소가 터질게 분명하다.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불확신으로 삶의 끝을 쿨한 척 보일지도 모르니. 하지만 모두에게 영원이란 것은 없음은 공평하기에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고민해 둘 필요는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몇십 년이라는 생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는 행운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지 않은가. 




캐나다에서 겨우 5년, 3명의 가족이 세상을 달리했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러 가지 못했다. 갖가지 이유를 빙자한 핑계라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한다. 꼭 남 일을 이야기하듯 말을 할 뿐이다. 세상의 전부였던 할머니의 죽음마저도 전화 한 통으로 받아들이고 피부로 와 닿지 않은 작별을 했으니 말이다. 


이민행 비행기를 타기 전 웃으며 작별했던 이들은 마치 순서를 기다렸다는 듯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은 아니었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오열하는 소리에 떨리던 손 끝의 촉감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소식이 궁금할 때마다 문자나 통화로 얼마든지 연락이 오고 가는 게 가능했기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진 거리를 실감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속속들이 들려오는 부고 소식에 곧바로 한국으로 갈 수 없이 묶여있던 나의 발을 보면서 이 곳이 얼마나 먼 곳인지 깨닫고, 발을 동동 굴리며 펑펑 울어버리는 것으로 그들과의 작별을 마주했다. 


제대로 인사하지 못하고 보낸 나의 가족들, 그리운 향수와 한 번씩 밀려드는 우울감은 엉키고 엉키어 맥을 놓아버리게 만든다. 시간에 대한 감마저 잃을 만큼 일속에 빠져있을 때 문득 느껴지는 공황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사는 이유를 찾는 중 그 이유가 그저 그런 것들일 때 깨닫게 되는 허무함이 강하게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삶을 끌고 가는 이유는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일까. 나와 함께 존재하는 이들을 위한 것일까. 모두가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는데 너무 의미에 치중하며 예민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살고 싶은 이유와 살기 싫은 이유들이 펼쳐질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다시 살만해졌던 경험을 잊어버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절대로 의연해질 수 없는 그 단어 앞에서 애써 의연해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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