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녀간 빈자리
식비도 아껴볼 겸(실은 장 보러 나가기 귀찮아서) 있는 재료들로 대충 저녁을 준비하려 냉장고를 열었다. 잠깐 다녀간 엄마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눈길을 멈추게 만든다. 버리려고 뭉쳐둔 자투리 김밥용 김이 아까우시다며 한 장 한 장 모아서 만든 장아찌, 양념장 이것저것 눈대중으로 대충대충 넣어 만든 초고추장, 한 끼식 만들어 먹을 수 있게 소분하여 이쁘게 압축한 마른 멸치들과 부산 기장시장에서 사 왔다는 말린 다시마까지. 무엇보다 엄마의 야무진 손 끝을 거쳐 굉장히 깔끔해진 냉장고를 보고 있자니 잔소리 툴툴 내뱉으며 지저분한 딸내미 살림살이들과 고군분투하던 주방에서의 엄마 모습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잠깐이지만 엄마가 다녀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생전 처음 해보는 해외여행이 하필 딸이 사는 곳이라 엄마의 큰 여행용 트렁크엔 여행을 위한 준비보단 내가 부탁했던 한국산 화장품들과 속옷, 손주를 위한 시원한 여름 잠옷 가지 등으로 가득 차있을 뿐이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우리에게 이것저것 챙겨줄 들뜬 마음으로 짐을 쌌을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울컥 올라온다.
괜찮은척했지만 실은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음막 먹으면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며 통화하고 살 수 있는 시대에 이루어진 우리의 아날로그적인 공항의 헤어짐은 나와 아이, 남편에게는 깊은 여운으로 남아 좁은 집안이 썰렁해졌을 정도로. 기억에 전혀 없던 외할머니의 정을 듬뿍 받은 아이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으면서도 '할머니'라는 단어가 들리면 아직도 금방 울음을 터트린다.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할머니의 정을 아이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나에겐 어려웠던 엄마
아주 살가운 모녀 사이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엄마의 삶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애틋한 감정이 축적되고 있는 찰나였다. 아빠와 할머니로 가득 찬 유년시절의 기억엔 엄마와 공유한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것도, 흔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사이로 낯간지러운 애정표현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평범한 모녀 사이처럼 안부를 궁금해해 주고, 아빠도 남동생도 모르고 지나치는 생일을 유일하게 챙겨주는 진짜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의미의 엄마와 함께한 십여 일의 시간은 생각보다 큰 임팩트로 감추고 살아왔던 엄마 정에 대한 갈구를 수면 위로 올려놓아 버렸다. 휘휘 저어버리고 간 것처럼.
이른 새벽부터 구수하게 맡아지는 된장찌개 냄새와 도마 위에서 맛있게 썰어지고 있는 칼 소리가 아주 어릴 적부터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평범한 일상의 한 대목이었던 것 같아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한참을 울다 일어나기도 했다. 내 주방에서 엄마가 요리를 하며 대충 끓여 맛이 없을 거라는 자신 없는 말투로 된장찌개를 한 입 떠먹여 준다. 십 년이 가깝게 나도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왔지만 서른이 훌쩍 넘긴 나이에서야 아무런 의구심 없이 느끼고 있는 나의 엄마의 정이 벅차 슬프기도 했다. 더없이 평범한 광경이 우리에겐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구나.
엄마는 오랜 사회생활이 여실히 묻어나는 거칠고 투박한 말투를 썼지만 이쁜 옷을 차려입고 이쁜 포즈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웬만해서는 충족시키기 힘든 까다로운 식성을 지녔지만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허리 버튼을 풀어 열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디테일하게 알지 못했던 엄마의 일부들을 알아갈 때마다 어색할 때도 잠깐 있었지만 나의 이상에서 추구하는 엄마와 현실 속 엄마의 차이를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어린 기억 속에서 떠올려지는 차갑고 무서웠던 엄마의 모습도 나이를 먹어가며 자연스레 이해하고 받아들여졌다.
외국생활을 하는 딸이 걱정되어 보러 온 엄마는 걱정 한 보따리를 내려놓고 간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가벼운 마음으로 홀연히 돌아갔는데 왜 나는 엄마의 정이 더 아쉬워진 것일까. 삼십 년을 넘게 눌러 담아 온 정이 담을 수 없게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