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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Jan 06. 2020

영화 제작실장은 무슨 일을 할까?

: ‘갑’과 ‘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을’


영화가 만들어지는 가장 첫 단계는 ‘기획’이다.

제작자 혹은 프로듀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 아이템을 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를 찾거나 시나리오 작가에게 의뢰한다. 그리고 시나리오가 완성도를 갖추면, 제작자 혹은 프로듀서는 이 시나리오를 책임지고 영상화할 수 있는 감독을 찾아 결정하고, 투자사와 매니지먼트에 시나리오를 돌린다. 그렇게 감독/투자/주연 캐스팅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제작실장을 미팅한다. 고로 제작실장은 프로젝트 사무실에 출근하게 되는 첫 번째 스태프이다.


자, 그럼 영화 제작실장은 무슨 일을 할까?     

  



1. 스태프 및 캐스팅 라인업

첫 출근을 하면 노트를 들고 프로듀서 방문을 두드린다. 출근하기 전까지의 진행상황을 듣고, 영화에 적합한 파트별 스태프(촬영, 조명, 미술, 의상, 분장 등등) 논의한다. 프로듀서는 거론된 스태프들을 감독과 상의하고, 만나보고 싶은 후보들을 최종 정리한다. 그럼 제작실장은 최종 후보들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시나리오를 건네고, 그들이 프로듀서와 감독을 만날 수 있도록 미팅 스케줄을 잡는다.


* 주조연 캐스팅도 스태프 라인업과 동시에 진행된다. 프로듀서와 감독이 생각했던 배우들의 스케줄을 알아보고, 매니지먼트에 시나리오를 보내고, 미팅 스케줄을 잡는다.(단역의 경우, 연출팀에서 오디션을 진행한다.)


>> 그래서! 매해 개봉한 영화 그 영화에 참여했던 파트별 스태프들을 리스트로 만들어두면 좋다.

나는 첫 출근 후, 프로듀서 방문을 두드리기 전에 최근 5년 내에 작품을 했던 스태프들의 리스트를 출력해서 가지고 들어간다. 이 리스트를 기준으로 지금 하고 있는 영화에 적합한 스태프들을 추린다.

>>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면 연령대별로 리스트를 업데이트해둔다. 그래서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무조건 많이 봐야 한다. 감독만큼이나 배우들에 대해 많이 알아야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


2. 예산의 운영 

제작자 혹은 프로듀서는 영화의 장르, 감독의 역량, 캐스팅 상황, 가능한 관객의 규모에 따른 손익분기점 등을 예상하고 그에 맞는 예산을 투자사와 협의한다. 출근하면 이번 영화는 대략 OO억원의 예산을 투자사와 협의하고 있다고 프로듀서가 알려준다.

자, 그럼 제작실장은 시나리오를 읽고 분석하고, 조감독과 하루에 찍어야 할 분량 즉 회차를 정리한다. 그리고 그 회차에 따라 스케줄(촬영 일정)을 잡고, 스태프 및 캐스팅, 장비, 차량, 특수효과 등등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항목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OO억에 맞도록 그 항목들에 예산을 분배한다.


참 이상한 게 50억짜리 영화도 100억짜리 영화도 예산은 늘 부족하다. 부족하다고 해서 무한정 예산을 늘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제작실장은 이 영화가 OO억원으로 찍을 수 있도록 적합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건비, 출연료뿐만 아니라 특정 장면에 필요한 장비의 종류, 단가, 업체 등등 영화에 필요한 전반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예산을 관리하는 능력은 제작실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그러므로 다른 파트들보다 더 많은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3. 금액 조율 및 계약 진행

이제 예산의 가이드라인 나왔고, 프로듀서와 감독이 스태프 및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 그럼 제작실장은 파트별 예산을 기준으로 스태프/배우/장비/참여업체을 만나 금액을 조율하고 계약을 진행한다.

돈이란 건 그게 얼마든 간에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만족스러운 금액은 없다. 분명한 건 제작실장은 두 사람들 사이를 ‘조율하는 사람’이지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제작실장이 돈을 많이 주고 싶다고 해도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영화에 따라, 파트에 따라, 맡은 포지션에 따라, 정해놓은 예산에 따라 두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하고 또 설득’ 해야 한다.

 

4. 촬영 준비

영화에 필요한 스태프/배우/참여업체들 및 예산을 확정. 영 준비기간 제작팀은 로케이션 헌팅 및 섭외, 저작권, 협찬, 배우에게 필요한 트레이닝 등등 영화 안과 밖에 들어가는 모든 상황들을 체크하고, 파트별 스태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준비해줘야 한다.


프리 프로덕션(촬영 준비)을 하면서 감독과 각 파트별 스태프들은 수많은 회의를 하고, 각 파트별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이때 감독 마음대로, 프로듀서 마음대로,  파트 스태프들 마음대로 각자가 생각한 영화를 준비한다면 그 영화는 어찌 될까? 들 프로니까 알아서 하겠지’라고 놔두면 결국 아무도 알아서 하지 않는다.


여기서 제작팀의 업무능력이 차이가 난다. 제작팀은 그들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치열하게 대화하도록 하고, 좀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도록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그냥 놔두면 프로덕션(촬영)을 진행하면서 땅을 치고, 개봉하고 나면 남는 건 후회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하는 임으로 관계를 이끌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제작팀이 있다.


>> 몇 년 전 일이다. 창고를 찾는데 전국을 뒤졌지만 화 속에 나오는 이미지의 장소를 찾지 못했다.  

창고를 여기로 시나리오를 바꿀게! 대신 액션 하루 더 찍어도 될까?

감독은 80% 마음에 드는 장소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까지 얻을 수 있는 제안을 던졌다. 제작팀 여우같은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제작팀은 그곳에 쏟아부을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나눌 수 있고, 감독은 하루에 찍기는 부담스러웠던 액션씬을 좀 더 여유롭게 찍을 수 있게 된다.


제작파트의 일을 예로 들었지만 촬영을 준비하는 내내 모든 파트들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모두가 힘을 줄 때와 뺄 때, 선택과 집중을 잘하면 좋겠지만 그건 상상 속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영화가 감독 마음대로, 투자사 마음대로, 제작자 마음대로 하는 것 같겠지만 영화는 어느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끌고 갈 수 없다. 한 편의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밀당의 고수’가 되어야 한다.


5. 촬영

자, 드디어 준비 끝났다. 이제 하루하루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진행만 하면 된다. 그러나 한 작품을 하는데 수만 가지 사건사고가 생긴다. 막내가 문자 하나만 뚝! 보내고 다음날 나오지 않는 사사로운 사건부터 감독과 배우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스태프들이 몇 시간이고 대기해야 하는 상황, 촬영 도중 눈 깜짝할 사이 배우가 다치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폭우로 세트가 비에 잠기기도 다. 이렇듯 예상 가능한 문제부터 생각조차 못했던 사건사고를 비롯해 날씨 그리고 시간과도 싸워야 한다. 제작팀은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정해진 촬영 기간 안에 영화를 무사히 찍을 수 있도록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    


6. 후반 작업

촬영이 끝났다. 그럼 이제 끝일까? 아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한 편을 더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다. 찍은 데이터를 가지고 편집기사와 감독이 편집을 한다. 편집이 끝나면  C.G팀은 C.G작업을, D.I팀은 색보정을 그리고 음악감독은 음악 작업에 매진한다. 이때 제작팀은 파트별로 필요한 부분을 연결하고, 채워주고, 조율한다. 그리고 편집본을 가지고 투자사와 관계자 혹은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듣는다.


반응이 안 좋다? 그럼 다시 편집에 들어간다. 그러는 동안 투자사, 제작자, 프로듀서는 개봉 시기 결정한다.

경쟁작들의 동태를 살피고, 마케팅팀과 홍보방향을 논의한다.

관객들에게 보여줄 만한 편집본이 완성됐다면 최종 믹싱 작업과 함께 모든 후반 작업을 마친다.

그럼 두근두근 설레고 떨리는 개봉이다.

영화가 개봉하고, 매일매일 관객수를 체크하고, 최종 예산을 정리하면 제작실장의 업무도 끝난다.




모든 제작실장이 똑같이 일하지는 않는다. 제작실장도 프리랜서다.

직장(제작사)에 따라, 영화에 따라, 경력에 따라, 상황에 따라 참여하는 기간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

그러나 제작실장은 영화가 완성되도록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고, 영화라는 톱니바퀴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제작사와  사이, 감독과 스태프 사이, 태프 스태프 사이를 ‘조율’하는 사람이다.

그러 결국 제작실장도 스태프이고, ‘을’이다. 그런데 업무가 ‘갑’과 ‘을’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마치 ‘갑’인 것처럼 스태프들이 바라볼 때 상처를 많이 받는다.


영화는 기획/시나리오 단계, 촬영 준비 단계, 촬영 단계, 후반 작업 단계를 거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각 파트마다 말하지 못하는 고충들도 있겠지만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서로 토닥토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운 날씨에도 코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모든 스태프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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