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동안 출근하기 무섭게 책상에 앉으면 똥 쌀 시간도 없이 남이 싼 똥들만 치우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 해가 어둑어둑 지고, 절대 야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가게들이 문을 닫는 시간에야 겨우 퇴근을 하고, 편의점에 들려 대충 먹을거리를 사서 집에 들어와 허겁지겁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좋아하던 산책까지 패스하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문득 일상이 무료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출근을하지 않는 휴일이면 보통 커피숍에 와서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씻기조차 귀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면 잘수록 쏟아지는 잠을 잤건만 컨디션이 돌아오질 않았다. 마치 오래된 전자제품처럼.. 충전을 해도 배터리가 금방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방전을 알리는 불이 계속 깜빡임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출근을 하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그저 버티다 보니 문득 "나는 요즘 무슨 낙으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사는 낙'이 없었다. 지금의 이 버거운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사는 낙'을 찾아야 했다.
'사는 낙'을 찾아서...
예전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사는 낙'을 찾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재미가 없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가 재미없어진 건지... 지금 내 심신이 평안하지 않기 때문에 뭘 봐도, 뭘 들어도 재미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보는 것>으로는 '사는 낙'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만나서 실컷 수다를 떨고, 맛있는 걸 먹으면 찾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물었다.
"요즘 뭐 재밌는 거 없어요?"
"그런 게 있겠냐?"
"언니는 무슨 낙으로 살아요?"
"낙은 무슨 낙!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사는 낙'이 없다!> 이 감정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라고 한다면 조금 위로가 되어야겠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고단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게 그저 버겁기만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 '사는 낙'을 찾고 싶었다.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건가? 일을 그만두면 사는 낙을 찾을 수 있으려나?'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당장 '사는 낙'을 찾아 일을 그만둔다면 기다리고 있는 건 막막한 현실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쩌면 그래서 개그맨 박지선의 죽음이 유독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마치 나에게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처럼 느껴졌다. 죽을 용기로 살라고들 하지만.. 살아서 더 좋을 게 없는데 죽지 않을 이유 또한 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20대의 나는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살았다. 그런데 죽지 못해 살다 보니 산다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30의 끝자락에 살아갈 날들이 마냥 설레고 즐겁지는 않다.
그러니까 요즘 계속 이 상태다. 그래서 글쓰기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원래 나쁜 마음들은 전염이 더 빨라서 지금 내 상태로 글을 쓴다면 이 마음이 그대로 전염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잤다. 그냥 누워있었다. 그냥 쉬었다. 제대로 쉬는 게 무언이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러다 오늘 ‘놀면 뭐하니?’에서 이효리가 던진 질문에 김종민이 한 말이 가슴에 툭- 꽂혔다.
“하기 싫은걸 자꾸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맨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어떻게 사나?라고 생각한다!”
어리바리해 늘 손해만 볼 것처럼 보였던 김종민의 이 평범한 대답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을 박차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왔다. 커피숍을 향해 걷는데 문득 발 밑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가을'이구나! 아...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가을'을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 뒤늦게 무슨 '가을을 타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가을 탄다'라는 말을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식한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지금까지의 감정들은 그저 '가을'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는 것처럼.... 이 감정들도 끝이 나고, 다시 새로운 낙을 찾을 수 있기를.
'재미'가 뭘까?
'사는 낙'을 찾다 보니 '재미'가 뭘까? '재밌는 삶'은 어떤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됐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의 버티려는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재미'를 찾았다. 그리고 살아가는 게 생각만큼 '재밌지 않다'는 걸 확인하면서... '사는 낙'이 없다며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들을 더 쌓아 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보니 문득 살아감에 있어서 '재미라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도 있겠지만... '전쟁 같은 하루'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로 그 순간에는 어이없고, 답답하고, 화가 나고, 그로 인해 잠을 설치기도 하고.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수십 번 고민하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 과연 정답일지 오답 일지 걱정하고. 후회하기도 하는....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것을 알지만 그 순간에는 뜨거워서 어쩌지 못했던, 그 시간들도 살아가는 '재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반복되는 일상은 무료하다. 그리고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내가 생각했던 삶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괴리감은 크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도 늘 즐겁지 않다는 것은 오래전에 알았지만.... 오늘은 문득 살아감에 있어 '재미'라는 것에는 소용돌이치는 인생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것도 '재미'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