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나 상황을 만나게 되면-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을 때,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과해지면 평소 좋아하지 않은 '단맛'은 물론 좋아하면서도 잘 먹지 못하는 '매운맛'까지도 미친 듯이 찾는다. 그렇게 한동안 뱃속이 잠시라도 비워있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 마냥 뱃속을 채우고 먹고 먹는 날들이 계속됐다.
먹는 존재
먹는 날들이 지속되자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제 새벽에도 먹지 않으려고 했으나 뒤죽박죽인 머릿속이 먹지 않은 채 잠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12시가 넘어서 라면을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은 최대한 '먹지 않기로' 다짐을 하고 출근을 했다.
오후 12시 점심시간이다.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간이 됐으니 먹긴 먹어야 한다.
'어제는 면을 먹었으니 오늘은 밥을 먹을까?' 싶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여사는
"비도 오는데.. 이런 날은 뜨끈한 국밥이야!"라고 말하며 나를 순댓국밥 집으로 데려간다.
비 오는 날, 보글보글 끓는 순댓국밥.
평소에는 한 공기를 다 먹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먹는 양이 늘었는지 뚝배기의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 5시. 남이 싼 똥들을 치우느라 정작 내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시간, 즉 당이 떨어지는 시간이다. 조금 걸어야 하지만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헤이즐럿 라떼'를 사기 위해 이여사와 함께 나왔다.
라떼만! 마시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쿠키 굽는 냄새가 죽여준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오늘은 쿠키를 추가한다. 초코칩이 잔뜩 올려진 커다란 쿠키를 보며 '이걸 언제 다 먹지?!' 했던 생각이 무색하게 수다에 열을 올리다 보니 쿠기와 라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후 8시. 사무실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걸으며 저녁을 먹을지 말지 고민한다. 집에는 먹을 게 없고, 아무것도 안 먹자니 새벽녘에 폭식을 할 것만 같고, 편의점은 지겹고, 라면은 어젯밤에 먹었으니 패스.
문득 고개를 돌리니 버스정류장 앞에 얼마 전까지 공사중이던 한솥 도시락이 오픈했다. '그래 간단히 먹자.'
오늘 저녁은 돈가스 도련님 고기 많이 많이.
오후 9시. 씻기 전 동네 한 바퀴를 돌기로 한다. 크게~ 한 바퀴를 돌아 합정역 주변까지 걷고 있는데 '어?' 우연히 친구 녀석을 만났다.
"간단하게 맥주라도 한잔 하자!"
"나 방금 저녁먹어서 배부른데........?"
"너 여기 육전 먹어봤어?"
"육전?"
간단하게 맥주 한잔과 함께 육전에 갓김치를 돌돌 말아 입에 밀어 넣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만큼 오랜만에 만난 육전도 입에 촥촥 감긴다. 그렇게 12시가 넘어간다.
"헉"
"왜?"
"나 토할 거 같아. 오늘도 너무 많이 먹었어"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어제의 나를 반성하며 최대한 먹지 않기로 다짐한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안받을수는 없고,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맛있는 걸 먹으면서 푼다.
하지만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쌓이고, 스트레스가 과해지면- 먹고 먹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고통'으로 지금의 스트레스를 잊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이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이해하려고도, 이렇게 먹어대는 나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지 먹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몸이 무거워졌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숫자를 보게됐다. (몸무게에 한계란 없나 보다.)
분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었는데, 먹고 나니 또 다른 스트레스가 생겼다.
그러니까 먹어댄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질 못했다. 결국 이렇게 몸이 엉망이 되고서야 멈춰야 한다는 것을 자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