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시탐탐 Aug 17. 2020

사람이 변하니?

: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요가를 다니지 못하게 됐다. 그렇게 한동안 운동을 전혀 안 하다가 몇 달 전부터는 퇴근을 하고 나면 동네 구석구석을 시작으로 한강까지 걷기 시작했다. 이 골목 저 골목 여기저기- 한참을 걷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도, 답답한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고, 흠뻑 땀을 흘리고 난 뒤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와서 선풍기를 틀어 놓고 가만히 누워있노라면..... 힘들었던 오늘 하루도 별일 아닌 것 같은 생각과 함께 까무륵 까무륵- 잠이 든다.  렇게 하루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좋아져서 늦게라도 산책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산책 중에 자주 보게 되는 아저씨가 한 명 있다.




합정동 인근에서 술을 마셔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이 아저씨를 만나봤을지도 모르겠다. 이 아저씨는 언제나 리어카 가득- 막걸리를 싣고 다니면서 술집들, 혹은 술집 앞에 담배를 피우러 나온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팔고 있다. 간혹 산책을 하는 나에게도 무어라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시며 껄껄껄~ 웃기도 한다. 나는 이 아저씨가 불편했고, 산책을 하다가 불쑥불쑥- 아저씨의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들리면 그 골목을 피하곤 했다.


그리고 비가 오는 토요일, 동네 친구인 추와 윤을 만나 집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껄껄껄~ 아저씨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아저씨가 가게 앞에 리어카를 멈추고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주인은 익숙한 듯 아저씨를 말리지 않았고, 아저씨는 가게 안을 한 바퀴 휘~이 돌면서 손님들과 친구처럼 웃고 떠들다가 다시 리어카를 끌고 유유히 사라졌다.

"비 오는데도 나오셨네!"

"저 아저씨 알아?"

"너 몰라? 저 아저씨 이 근처에서는 꽤 유명해"

"나 산책할 때 자주 봐- 왠지 무서워~"

"저 아저씨 한때는 잘 나가는 조폭이었대!! 그래서 웬만한 가게 주인들도 안 건드린대"

"으잉? 잘 나가는 조폭이 왜 리어카를......?"

"소문은 많은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지 뭐. 아무튼 지금은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거래"  

  

이후에도 산책을 할 때마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아저씨를 자주 본다. 자주 보면서 알게 된 한 가지! 그는 매우 성실하다. 매일 출근을 하는 사람들처럼, 매일 리어카 가득- 막걸리를 싣고 동네 구석구석,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한때는 잘 나가는 조폭이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 막걸리를 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저씨를 보니 문득 J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J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다. J와 내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더운 여름, 그날의 J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J가 갑자기 며칠 동안 결석을 하자 걱정이 된 나는 J의 집을 찾아갔다.(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으므로 집전화를 받지 않으면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몇 번의 초인종을 누르고서야 J의 집 대문이 열렸다. 그리고 대문 안에 J의 얼굴을 본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J의 얼굴이 여기저기 얼마나 맞았는지 온통 멍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J의 아버지는 주먹 꽤나 쓰는 조폭이었다. 집 밖에서의 주먹질은 집 안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맞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J의 엄마는 결국 도망쳤다. 그 뒤 J의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그 화를 모두 쏟아냈다. 아버지의 자비 없는 주먹질은 그렇게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다행인지 불행인지 J의 아버지가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었고, 그 뒤 집을 나갔던 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는 J를 데리러 왔다. 그날 이후 J와 아버지의 인연은 끝난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잊고 살던 J에게 불현듯 아버지가 찾아왔단다. 아주 초라해진 행색으로... 그때 J의 아버지는 주머니에 단돈 2,000원이 없어 자식에게 돈을 빌리러 온 것이다. 힘 하나만 믿고 살아온 남자가,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이-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손을 벌리러 오면서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J의 아버지는 고향으로 내려가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성실하게' 살고 계신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 10여 년이 지난 지금 J의 아버지는 손주를 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를 타신다. 


막걸리 아저씨와 J의 아버지를 보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믿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환경이, 상황이 바뀌면 사람은 변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최근에 결국 '차단' 해버린 상사가 있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 응어리다. 그녀를 '차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 안되더라도 부딪히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와 일하는 것이 좋았고,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후, 그녀는 하는 작품마다 성공했고 지금은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변했다.'


내가 그녀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주변에서 그녀에 대한 이런저런 안 좋은 이야기들을 해줬지만, 나는 내가 겪은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와 작품을 하게 되면서 처음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너무 태연하게- 아니 더 독하게 행하고 있는 그녀를 보게 됐다. 그러니까 '그녀는 변했다'


하지만 변한 그녀를 겪으면서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그녀가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내가 아끼는 다른 사람들까지 너무 많은 상처를 받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녀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인데 네가 몰랐던 거야!"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변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걸리 아저씨가, J의 아버지가 변한 것처럼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수 좋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