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시탐탐 Dec 27. 2020

책이 건네는 말.

: 그 시시콜콜한 뻔한 이야기들이 때때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


너무 피곤해서 잠마저 오지 않는 새벽... 애써 잠들기를 포기하고 다시 유튜브를 틀었다.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책을 읽어주는' 유튜브를 보게 됐다. 그리고 문득 올해는 책을 정말 안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습관인데...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미루다 보니 욕심부려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들이 침대 옆 서랍 위에 먼지와 함께 쌓여있지만 마음만 불편할 뿐 책을 읽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조금의 죄책감을 덜기 위에 유튜브 속 목차 리스트를 훑었다. 점점 뻑뻑해지는 눈을 비비며, 단지 잠들기 위한 수단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이라는 책의 서두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조곤조곤 읊어주는 책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보잘것없던 지금의 이 시간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초록이되고 나서야 앤은 자신의 빨강 머리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는걸 깨닫는다.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게 하는 힘 아닐까? "
    -  <빨강 머리 앤이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하는 말>  백영옥 作 중에서 -




그리고 문득, 그 책이 다시 생각났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作

스무 살, 1년 가까이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이전까지 내가 마음을 쏟았었던 사람들은 모두 바빴다. 그들에겐 각자의 삶이 있었다.

그 시간 속의 나는 내 삶이 버거워 그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원망스러웠다.

그 시간 속의 나는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과 위로들은 그저 동정과 위선처럼 느껴졌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몰랐지만 살아있었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던 세상은 계속해서 쉼 없이 돌아갔다.

그때 우연히 저 책을 읽게 됐다. 단지 책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위로가 됐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나도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저 책을 읽었을 때

그때의 그 감정들을 오롯이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책이다.


어쩌면 당시에는 나도 몰랐던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저 책이 들려줬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에세이집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한때는 열심히 읽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뻔한 말처럼, 잔소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너무도 뻔하고 익숙한 말들이, 글들이, 이미 알고 있던 정답들이... 놀랍도록 가슴을 휘젓고 들어와 꽂힐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처럼 

글은 때때로 뜻하지 않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툭-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을 들려준다.


그 말들로

지치고 힘들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틀린 건 아닌지 알 수 없을 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위로를 받게 된다


어쩌면 나는, 우리는

수많은 응원과 위로를 스스로 모른 척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라고 생각될 때

그 시시콜콜한 뻔한 이야기들이 때때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이라도 책이 건네는 말을 들어야겠다.


"기억해. 너에게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방황의 길을 오래 걷게 되더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오랫동안 알던 사람이 낯설게 느껴질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