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그럴까?

: 엄마는 무슨 음식을 좋아했어?

by 호시탐탐

다시 백수가 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전에는 간간히 들어오는 알바와 대출을 받으며 1년 이상도 버텼는데 이번엔 고작 2개월이 지났을 뿐인데도 '이대로 잊혀지는 게 아닐까?' '아무도 날 찾지 않으면 어쩌지?' '곧 마흔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영화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대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오래전 작품을 함께했던 회사의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간단한 안부인사를 주고받고, 그의 지인이 하는 영화를 소개받았다. 그러니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때 프로듀서, 제작사, 감독, 시나리오, 캐스팅 등등 나름 깐깐하게 이것저것 따졌으나 이번에는 재고 따지지 말고 '웬만하면 다 한다!' '나도 적금이란 걸 들어보자!'라는 목표와 다짐뿐이었다.

그런데 소개받은 영화는 시나리오에 비해서 투자받을 수 있는 예산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러니까 웬만하지가 않았다'

예산이 적다는 건 일반적인 영화보다 고생이 배가 된다. '그래, 고생 따위 하면 되지!'

감독이 입봉이다. '입봉이 어때서?'

감독이 두 명이다. '두 명? 두 명은 안 겪어봤으니... 새로운 도전이지'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이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이 영화를 하기엔 제 능력이 부족한 거 같아요”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건 다른 문제다. 일이 없으면 없어서 불안하고, 막상 들어온 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초조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민이 줄어드는 게 아니고, 같은 고민도 더 크게 다가온다.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글라스에 콸콸~ 부어 원샷을 하고 쓰러지고 싶었다. 비루한 몸뚱이가 고통에 아우성을 치면 산만한 머리도 잠시 아무 생각도 못할 거 같았다.




엄마가 찾아왔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찾아오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였다.

오늘의 메뉴는 감자탕이다.

'엄마가 이 음식을 좋아했던가?'

'엄마랑 감자탕을 먹은 기억이 있던가?'


갑자기 웬 감자탕?! 그것도 밖에 나가서? 아무리 오랜만에 만난 엄마라지만 밖에 나가는 건 귀찮다.

엄마는 끝끝내 나를 끄집어 내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감자탕 앞에 앉힌다.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나도 입을 꾹 다물고 앉아있다.

엄마는 큼직한 뼈를 내 접시에 담아준다.

나는 엄마와 접시에 놓인 뼈를 쳐다본다. 별 생각은 없지만 감자탕이니까 안 먹을 수가 없다.


엄마는 왜 그럴까?

어느 날은 자고 있는데 툭탁툭탁-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야?'

분명 엄마였다. 엄마가 내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내가 깊은 땅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엄마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먹인다.

내가 식탐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못 먹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왜 그렇게 나를 먹이는 걸까?


내가 보고 싶다고! 제발 꿈에라도 나와달라고! 사정할 때는 아무리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 엄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얼굴을 기억해 두려고 애써보지만 엄마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가 남기고 간 음식만 기억날 뿐이다.


꿈에서 깨면

나는 부엌으로 간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밥상을 차린다. 밥 한술을 큼지막하게 뜬다.

'엄마, 엄마 딸은 이 정도는 끄떡없어!'라고 엄마를 안심시킨다.

이렇게 불쑥불쑥 흔들릴 때 엄마가 찾아오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다.

한해 한해 내가 몰랐던 엄마에 대해서 알아갈 때마다 엄마를 볼 낯이 없다.

이제 딸 걱정은 그만하고 편안해져도 될 텐데 18년이 지나도 엄마는 내 걱정뿐이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다음에 엄마가 찾아오면 엄마 얼굴을 꼭 기억해야지!

다음에 엄마가 찾아오면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줘야지!

다음에 엄마가 찾아오면..........

그런데 엄마, 엄마는 무슨 음식을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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