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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Jun 11. 2021

내가 사는 반지하는.

: 집이 주는 편안함.


우리 집은 나름 핫플레이스라는 합정이지만, 반지하다. 어렸을 때, 반지하에 오래 살아서 반지하에는 절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10년이 넘도록 산 성남에서 아무 연고지도 없는 합정으로 이사 오면서 반지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반지하로 이사 올 때만 해도 따악! 2년만 살고 나가자 했다. 그런데 벌써 8년이 지났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우리 집 반지하는 싱크대를 벽돌 한 장 정도 더 높였지만, 설거지를 하면 배수구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거친 파도처럼 장판이 넘실넘실, 구깃구깃해진다. (이사한  얼마 안 됐을 때 비가 억수로 쏟아지자 장판이 들떠버렸다. 집주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만, 리모델링 당시 돈을 아껴보고자 싼 장판을 써서 그런 거 같다며 장판을 바꿔줄 수는 있는데 그럼 짐을 다 빼야 한다고 해서 그냥 참고 살고 있다. 그런 이놈의 장판이 장마철이 되면 자꾸만 구깃구깃해지더니 이젠 장판에 발이 걸려 넘어질 정도다.)

거기에 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것처럼 껑충 올라서야 있는 화장실은 눈만 감았다 떠도 곰팡이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손목이 아플 정도로 청소를 하는데... 당췌 티가 나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상태가 더욱 심각해지기에 여름이 다가올수록 이 반지하가 더더욱 싫어졌다. 그래서 계약 연장을 고민해야 하는 3월이 됐을 때 매일 직방을 둘러보고, 부동산 앞에 붙은 전단지를 한참 동안 보곤 했다. 그렇게 간절히 이 반지하에서의 탈출을 꿈꿨지만... 8년이란 시간만큼 변해버린 물가 때문에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리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올해도 이 반지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일을 하게 되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준다. 계약은 연장했지만 이 반지하에서의 탈출을 포기할 수 없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모아보고자 쉬지 않고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반지하를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그만둘 수 없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대부분 세트, 즉 지방 촬영이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만에 이 반지하로 돌아왔다.


여름이 빨리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랬지만... 여름이 오기도 전인 5월부터 계속 비가 와서 과연 이 반지하가 무사할지 걱정했는데... 역시나 분명 치우고, 비우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쾌쾌한 냄새부터 내 손이 미치지 않은 곳들에서 고스란히 반지하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 반지하는 분명 변한 게 없는데... 단지 쓰러져 자고 일어난 것뿐인데 그동안의 피로가 조금 풀리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한 달 만에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호텔처럼 빳빳한 이불도 아니고, 치워주는 사람도 없기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세제를 뿌리고 다시 빡빡 닦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는대도 예전만큼 이 반지하가 싫지가 않았다.


뭐지?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매일 탈출만을 꿈꾸던 이 지긋지긋한 반지하가 주는 이 미친 편암함은.

이제야 비로소 이 반지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그동안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매일 이 반지하의 안 좋은 점들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반지하가 점점 더 싫어졌던 것 같다.  


안 좋은 점들에 가려 애써 잊고 있었지만 사실 이 반지하는 지하철 역까지 걸어서 7분 거리다. 화장실 청소 때문에 세제 한통을 다 비우고, 다이소를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조용한 주택가를 나와 조금만 걸으면 없는 것이 없다.

아. 그리고 이 반지하는 햇빛은 잘 들지는 않지만, 창문을 열어놓으면 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아무리 좋은 호텔에서 지낸다 하더라도 이 반지하, 내 집만 한 곳은 없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옛말도 틀린 게 없다. 3시간을 달려와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자고 일어나 치우고, 버리고 다시 내려가야 하지만 빨리 촬영이 끝나 다시 이 반지하로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여전히 탈출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면 예전보다 이 반지하를 조금은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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