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아빠의 생일이었다. 아빠는 나랑 남동생의 생일은 모르면서 본인의 생일이 되면 어김없이 남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올 거지? 누나한테 연락해서 같이 와-"
출근하는 날도 아니었고, 마땅한 핑계가 없었고, 그렇다고 거짓말도 하기 싫었다. 어쩔 수 없이 가기 싫은 마음을 부여잡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주말인지라 차가 막힐 거라고 생각하고일찍 출발했는데 도로에 차가 없어서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도착할 듯했다.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남동생은 시간에 맞춰서 도착한단다. 아빠와 둘이 있기는 싫어 고민하던 차에 남동생이 미션을 줬다.
"그럼 케이크라도 사와- 아!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사"
웬 아이스크림 케이크? 인가 싶었지만... 시간을 메우기에 적당한 듯해서 근처 가게를 검색하고, 차를 돌렸다.
케이크를 포장하고도 시간이 남아 마트에 들려 아빠가 좋아하는 복숭아도 한 상자 샀다. 그런데도 시간이 남아 할 수 없이 마트 주차장에서 핸드폰을 보다가출발했다.
다행히(?)주차를 하고 있을 때 오빠와 남동생도 도착했다. 남의 집에 온 것 마냥 들어가지 못하고쭈뼛대고 있자 오빠가 내 손에 있던 케이크와 복숭아를 대신 들어주며 안부인사를 건네는데 아빠가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살아?"
"너 여기 처음인가?"
"어"
아빠는 지금 가게 뒤에 있던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단다. 그러고 보니 리모델링을 한다고, 붙박이장을 맞춘다고 남동생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살이 빠진 거야?"
"빠졌다 찐 거야!"
이 창고를 리모델링 한지도 2년이 다돼간단다. 그 말인즉 아빠를 본 지가 2년이 다돼가나 보다. 아빠가 살고 있는 창고 같은 방을 둘러보며 문득 오늘은 화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데 새엄마가 안으로 들어왔다. 새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돼서 걱정했는데 주말이어서 그런지 포장해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고 말하더니만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새벽부터 재워뒀다는 등갈비를 꺼내고, 허둥지둥 음식을 준비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근처 식당에서 편하게 밥이나 먹고 끝냈을 것을 '생일이 뭐라고-' 장사일로 힘든 새엄마에게 번거롭게 일을 만들어 드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옆에서 도와드리기에는 낯간지럽고 어색했다. 그렇게 눈치만 보는 사이 여동생이 남편과 딸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여동생은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새엄마옆에 서서 음식 준비를 돕기 시작했고, 오빠는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거라며 사 온 새우를 구웠다. 남동생과 여동생의 남편도 모두가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을 가져왔고, 여동생의 딸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방방- 뛰어다니며 할아버지인 아빠와 계속 떠들어댔다. 가뜩이나 좁은 방이 더 북적거렸지만 모두 이곳이 익숙한 듯 각자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순식간에 음식이 세팅되었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큰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의 대가족의 모습이었다. 그 새 흰머리가 더 많아진 아빠도, 그 새 살이 많이 빠진 새엄마도 '이렇게 전부 모인 게 얼마만이냐!'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뭔가 TV에서나 보던 왁자지껄한 가족의 분위기였다. 나는 음식이 많이 짰지만 새엄마가 직접 해준 음식을 먹는 건 처음이라 열심히 먹었고, 술은 먹지 못해 환타를 마시면서 사람들이 흥건히 취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었다.
그러다 여동생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외동이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한데 코로나로 인해서 장기간 학교에 못 나가다 보니 '사회화'가 덜 될까! 걱정이란다. 모두가 안 보내는 것도 아니니 계속 안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보내기도 불안하다고.
아이의 '사회화 문제'는 나와는거리가 먼이야기였지만... '고민일 수 있겠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데 오빠가 구운 새우 머리를 내게 건넸다.
"맛있어. 먹어봐"
"저 새우 머리 안 먹어요"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어. 한 개만 먹어봐"
"괜찮아요"
내가 새우 머리를 다시 돌려주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두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오빠는 착한 사람이다. 겉도는 듯한 나를 배려해주는 오빠의마음은 고맙지만 그래도 새우 머리는... 정말 싫다. 이 분위기를 어떡해야 하나 싶었는데 남동생이 껄껄껄 웃으며 술잔들을 채우더니만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누나가 '사회화'가 덜 됐어요"
"뭐?"
"아이스크림 케이크? 그거는 언제 먹는 거야?"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아빠의 말에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며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꺼내왔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보고 흥분한 여동생의 딸 덕분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처음 먹어본다는 아빠와 새엄마 때문에 금세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남동생이 카톡을 보냈다.
'집에 갈래? 오래 버텼네' 카톡을 보고, 남동생을 보자 남동생은 남은 술잔을 비우며 10시가 다 됐으니 누나는 보내주자고 말을 꺼냈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아빠의 집을 나왔다.
아빠와 새엄마. 새엄마의 아들과 딸인 오빠와 여동생. 그 여동생의 가족. 그리고 남동생.
밖에서 보기에는 우리도 가족이라 불릴지도 모르지만 함께 있는 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산 세월보다 함께 살지 않은 세월이 더 길기 때문에 남과 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랑 똑같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함께 웃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동생을 보니 나는 남동생의 말처럼 '사회화가 덜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에게 '오늘 고생했다'라는 문자를 보내고 누웠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갑자기 친한 척- 가족이라 불리는 이 사람들 속에 섞이는 건 어렵겠지만... 나도 '사회화'를 위한 노력이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