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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Dec 22. 2019

우울증이 찾아오면.

: 이번엔 얼마나 있다 갈 거야?


지금은 어쩌다 한 번씩이지만 20대까지 가위에 많이 눌렸다. 가위 많이 눌려본 사람은 다.

'아, 또 구나!'

가위눌림은 매번 다르다. 녀석들은 벽에서부터 스윽- 나오기도 하고, 계속 끌어당기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내 몸을 천장까지 부웅~ 띄우기도 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을 수없이 속삭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성격 책을 옆에 놓고 자거 주기도문을 외웠다. 어떤 날은 베개 밑에 칼을 넣고 잔 적도 있다. 그러나  방법을 써 녀석 막을 방법은 없다. 녀석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그저 녀석의 창의적인 등장 방법에 놀라면서 조금씩 익숙해질 뿐이다.

'어제 봤는 오늘 또 왔어? 쓸데없이 성실하네'


나는 녀석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지만 꼼짝할 수 없고, 그럴수록 더 무서워진다. 그래도 녀석이 물리적인 가해는 끼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어차피 발버둥 친다고 해서 내 의지로 눈을 뜰 수 없다. 그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침이 되고, 눈을 뜨면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녀석이 찾아오면 '아, 왔어? 오늘은 얼마나 있다 갈 거야?'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러다 보니 녀석을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다.




우울증은 가위눌림 보다 센 녀석이다. 녀석이 찾아오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 진다. 이 세상에 나란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든다. 밖에 나가기도 싫고, 누군가와 말을 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조차 싫다. 무얼 생각하든 그 끝은 끔찍하고, 비관적이며, 나를 끊임없이 좌절하게 만든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란 생각까지 미치다 보면 알게 된다. '아, 녀석이 왔구나'


이 녀석 역시 가위눌림처럼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예할 수 없다. 심지어 녀석은 30대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내 삶에 불쑥불쑥 끼어들고 있다. 오랜 시간 겪었지만 석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가위눌림 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녀석이 세지는 만큼 나도 녀석을 상대하는 몇 가지 방법들이 생겼다.     


1.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녀석에 대해서 알린다.

처음 녀석이 찾아왔을 땐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다. 먹지도 못하는 매운 음식이나 술을 먹기도 하고, 다른 생각은 못할 만큼 몸을 혹사시키기도 다. 그리고 사람들만났다. 그럼 녀석은 잠시 숨어있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녀석은 어김없이 나를 더 세게 후려친다.


녀석과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을 만나면 모든 게 아니꼽다. 별 뜻 없이 던진 말이 별 뜻 담긴 말로 들린다. 녀석은 내가 칼끝을 겨누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도록 돕는다. 그래서 잠수를 탔다. 그게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완벽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사람들을 떠나게 만다. 그래서 지금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녀석이 찾아오면 먼저 알린다.

“나 우울증이야”

“또?”

“응. 얼마가 걸릴진 모르지만 연락할게”


녀석은 쉽게 떨어지지 않다. 녀석에게 나는 굉장히 매력적인 상대니까! 사람들의 도움으로 녀석에게 벗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녀석의 힘은 점점 세졌고, 그런 녀석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 그래서 녀석이 찾아왔다! 는 걸 눈치채면, 바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녀석을 상대할 준비를 한다.


2.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 먼저 '나'에게 솔직하게 대응해야 한다.

-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을 흘리는 일이 창피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울고 나면 제법 후련하다. 모든 물은 고여있으면 썩는다. 눈물도 마찬가지다. 정기적으로 빼줘야 한다.

더 많이 울기 위해 슬픈 영화를 봐도 되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 참지 말고 더 크게 소리 내면서 울어도 된다. 우는 걸로도 안 풀리면 아악~ 하고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질러도 좋다. 기운 빠지면 없던 밥맛도 살아난다.

'울면 약해진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장담한다. '약해져도 괜찮다'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면 만나지 않아도 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평소에 '이래야 한다'라고 정해놓은 것들로부터 벗어나 본다.

‘이대로 괜찮을까?’는 생각이 들겠지만 장담한다. ‘이대로 괜찮다.’

 

- 그러다 보면 조금씩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럼 슬금슬금 집 앞을 산책을 하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멍을 때린다. 평소에 안 먹는 달달한 디저트를 먹어도 좋다.

'계속 이래도 괜찮을까?'는 생각이 들겠지만 장담한다.  '계속 이래도, 진짜 이대로! 괜찮다'


- 끔은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본다. 씁쓸하지만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건 남의 불행이다. ‘도대체 나만(나한테만) 왜 이까?’는 생각이 들겠지만 장담한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모두 비슷하다. 그래서 가끔은 남의 불행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는 아직 괜찮구나'하는 안심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불행 또한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다. 그러니 숨기지 말고 경쟁해야 한다. 로의 불행에 대해서!  


- 렇게 그때그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솔직하게 대응해야 한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숨기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 가끔은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나를 위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긴다. '무가'는 항상 다르다. 그게 무엇이든 그때 그걸 하면 된다.


3. 좋아하는 것을 적어본다.

남자 친구는 나보다 더 무미건조한 사람이다. 그런 그도 어린 시절 음악에 빠져서 잠 못 이뤘다고 한다. 선릉역 언니는 워너원 박지훈 앓이 중이다. 또 안암역 친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숨은 맛집을 찾아다닌다.

음악이든, 연예인이든, 음식이든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데 나는 좋아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빠질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나한테는 그런 게 없어”

“네가 왜 없어? 너 커피 좋아하잖아”

“좋아하지. 근데 그렇다고 맛있는 커피 집을 찾아다니진 않잖아”

“꼭 찾아다녀야 좋아하는 건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너 글 쓰는 것도 좋아하잖아”

“글은 그냥 마음 정리하려고 쓰는 거지”

“야, 난 그렇게 쓰라고 해도 못써. 꼭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 다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두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니 나는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날 이후 기분이 어쩌지 못하게 가라앉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혹은 싫어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적는다. 적다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4. 혼자 여행을 떠난다.

나는 영화일의 특성상 작품이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인지 작품끝나고 나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 기간이 길어지면 짐을 싼다. 혼자 여행을 떠난다.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떨어지게 되면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하게도 익숙했던 것들에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행이 끝나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사람이 몹시 그리워진다. 나를 낯선 환경에 놓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훗,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 통화가 생각났다. 이 녀석도 앞에 녀석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나는 예민해서 장소나 환경이 바뀔 때 혹은 스트레스가 과해지면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요즘 우울증 녀석과 동거 중이라서 그런지 녀석이 찾아왔다. 하루에 두 번은 큰일을 보는 남동생은 내가 이 녀석과 함께 할 때마다 놀라워한다

괜찮은... 거야?”
“괜찮지 그럼, 얜 내가 이겨

    

변비, 이 녀석은 녀석들 중 제일 쉬운 상대다. 약을 먹을 수도 있고,  많이 먹어서 떨쳐낼 수도 있다. 일단 오늘까지는 스스로 물러나길 기다려 볼 예정이다.


가위눌림, 우울증, 변비 등등 녀석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막연하게 나이가 들면 녀석들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유연하지 못하다. 아직까진 녀석들과 '완벽한 이별'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녀석들이 세지는 만큼 나도 단단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녀석들을 떨쳐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계속 찾아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함께하고 있는 우울증 녀석에게도 한마디 해야지. '이번엔 얼마나 있다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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