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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Dec 18. 2019

사주 잘 보는 곳 없어?

: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사주 잘 보는 곳 없어?'

한동안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연말은 연말인가 보다. 갑작스러운 남동생의 요청으로 주변에 갈만한 곳들을 물어보고 이태원의 남선생을 소개받아 예약했다.

'점도 아니고 사주가 예약까지 해야 하는 거 보니 엄청 잘 보는 사람인가 봐!'


호기심을 가득 안고 이태원에 도착했다. 좁은 카페 안에는 테이블이 3개가 있었고, 왼쪽에는 커플이, 오른쪽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3명이 앉아 있었다. 다소 샌님처럼 보이는 남선생은 얼음 동동 띄운 커피를 앞에 놓고, 생년월일과 시간을 묻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님은 남자를 개무시하는 사주예요. 남자랑 타협 안 하지? 님보다 잘난 남자는 시작을 해도 오래 못 갈듯.

언제 결혼하면 좋은지 이야기해줄게! 48살. 경쟁자들 다 보내 놓고. 의심이 많으니 동반자 같은 사람과 결혼해. 늦은 거 같겠지만 10년도 안 남았어. 그때부터는 물질적, 이성적으로 다 풀릴 거예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내게 언제 결혼하면 좋은지까지 이야기하고 궁금한 건? 하고 물었다. 내가 멀뚱히 앉아있자 정해진 매뉴얼처럼 무슨 일을 하는지 묻고는 직장 그만둘 생각 하지 말고, 지금 하던 일을 열심히 하란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다 기다리고 있는 다음 사람을 위해 카페를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사주를 보러 간다.

“38살한테 10년 후부터 잘 될 거라고 하는 건 좋은 이야긴가? 나쁜 이야긴가?”

“그래도 언젠가는 잘될 거라는 거니까 좋은 이야기 아닌가?”

남동생은 남선생이 한 이야기들은 눈치와 센스만 있으면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며, 10만원으로 옷이나 사 입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고 했다. 남동생의 말을 들으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괜찮은 점집, 잘 본다는 사주카페 이야기를 들으면 또 보러 간다.


우리는 왜 사주를 보러 가는 걸까? 

우리가 사주를 보는 동안 옆 테이블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밖에는 줄 서서 기다리기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30분에 5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도 이 작은 카페에는 사람이 쉴 새 없이 들어온다. 사람들이 이 곳에 오는 이유는 대부분 '죽일 놈의 이성과 죽일 놈의 돈' 때문이다. 그래서 남선생도 정해진 매뉴얼처럼 두 문제에 대해서 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두 가지는 나이를 먹어도 답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할까요?'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더 행복한지 누구든지 알려줬으면 싶다.


누군가가 알려주는 대로 살면 더 행복할까?

[사이코패스]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주된 배경이 몇십 년 후의 미래다. 그 미래에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 위험인물로 간주해서 체포된다. 그래서 스트레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눈을 뜨면 뭘 입을지, 뭘 먹을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직업) 등을 정해준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시스템이 나에게 가장 최적화된 것을 선택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미래가 오면 우리는 행복할까?   


“제가 글을 써도 될까요?” 굳이 왜 하려고 하냐. 그래서 안 하면?

“이 사람을 다시 만나도 될까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테니까 헤어져. 그래서 헤어지면?

결국 후회하는 건 그렇게 하라고 말해준 누군가가 아니라 '나'다.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 말도 안 듣는 게 우리다.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알려줬으면 싶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그러니까 내가 사주를 보러 가는 이유는

좋은 이야기는 기분 좋게 새기고, 안 좋은 이야기는 조심하기 위해 사주를 보러 간다.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건데 대가 없는 '응원'이 듣고 싶어 사주를 보러 간다.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해도 된다''괜찮다''만나라'는 말을 듣고 싶어 사주를 보러 간다.

스스로에게 잘될 거라는 주문을 걸기 위해서 사주를 보러 간다.


그러니까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

오랜만에 안암동 친구를 만났다. 사주를 본 이야기를 하자 불쑥 그 친구가 내 손을 좀 보자는 거다. 안동 친구는 군대 시절에 심심풀이로 손금을 공부했다. 예전에 장난처럼 봐준 적이 있지만 내 손금은 좋은 손금은 아니다!라고만 하고, 그 뒤로 봐주지 않았었다.

“너 손금이 변했네”

“응? 손금도 변해?”

“응, 계속 변해”


사주가 손금을 못 따라가고, 손금이 관상을 못 따라가고, 관상은 심성을 못 따라간다고 한다. 손금은 마음먹기에 따라 자잘한 잔선들의 변화가 있다. 즉 말 그대로 손금은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 때나 내가 마음먹은 게 손금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심성, 마음이 중요하다. 사주나 손금을 맹신하고 노력 없이 기대려고만 하면 가지고 있던 운마저 사그라질 수도 있다. 타고난 운명을 탓할 시간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차피 인생에 요행은 없다. 잘 될 거라 믿고 움직이다 보면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진 않을까?

그러니까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은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러니까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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