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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Jan 23. 2020

엄마의 토마토

: 그건 엄마의 외로움이었다.


설이 되면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목욕탕에 다녀왔다.

뜨끈뜨끈한 탕 속에서 멍~을 때리고 있는데, 찰싹! 찰진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이제 10살 정도 될법한 아이와 엄마다.


찰싹! 내가 맞은 것도 아닌데 내 등이 따끔거린다.

목욕탕에서 때는 안 밀고, 사람 구경을 하고 있노라면 엄마도 내 등을 저렇게 찰싹! 때리곤 했다.

나도 10살 즈음엔 엄마 목욕탕에 갔던 거 같은데, 좀 크고 나서는 엄마가 부탁을 하고, 사정을 해도 목욕탕만큼은 절대 안 갔다.


목욕탕 같이 오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지금이라면 매일 가자고 해도 갈 텐데...

몸에 있는 흉터 때문이었는지, 사춘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목욕탕이 죽도록 싫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달목욕을 다닌다.


엄마 생각이 나서 목욕탕을 나오면서 바나나 우유를 샀다.

잔뜩 기대했지만 엄마가 사줬던 그 바나나 우유 맛이 아니었다.

집으로 터덜 터덜 걸어가는데 혼자서 목욕탕을 다녀오던 엄마가 많이 외로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여 솟아라! 쉬라의 이름으로.


<우주의 여왕, 쉬라>는 1980년대 초, 여자가 더 이상 보호받는 역할이 아닌 직접 칼을 휘두르고, 악당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한다는 여성 히어로 애니메이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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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여왕, 쉬라> 애니메이션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검색해봤다. '그래, 이런 만화가 있었지' 정도만 생각날 뿐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면 바로 저 <쉬라칼>이다. 저 <쉬라칼>이 우리 집에도 있었다.


목포에서 성남으로 이사 오고 난 후의 기억이니

아마도 내가 7살, 남동생이 4살 즈음이었을 거다.



아빠가 들어오지 않은 늦은 밤, 엄마는 <쉬라칼>을 휘둘렀다.


부엌에서 이미 깨끗해진 냄비를 닦고 또 닦는 엄마.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리 없는 어린 딸과 아들은 잠들지 않고 재잘재잘 떠들었다.


"늦었으니 그만 떠들고 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잠시 몸을 움츠렸다가 다시 까르르르~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째가 되자 몹시 화가 난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언제나 '말'로 우리를 혼냈다.

엄마는 '말'만으로도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엄마는 <쉬라칼>을 들었다.


나는 겨우 '잠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쉬라>을 든 엄마에게 화가 났다.

우리는 악당은 아니었지만 <쉬라칼>을 든 엄마와 맞서 싸웠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싸움이 시작됐다.

그러다 내 허리춤에 <쉬라칼>이 닿았다. 살짝 스쳤지만, 어린 살결엔 벌겋게 생채기가 생겼다.


엄마는 다친 나보다 더 놀랐다.

그리고 엄마는 다친 나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나는 다친 것보다 서럽게 우는 엄마를 보고 더 놀랐다.

토닥토닥- 고사리만 한 손으로 엄마의 등을 두드렸다.


"엄마, 난 괜찮아!"     

어린 나는 엄마가 서럽게 우는 이유가 '나한테 미안해서'라고 생각했다.

그 싸움은 우리의 승리였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의 승리가, 그날의 <쉬라칼>이, 그날의 엄마가 잊히지 않는다.     



        

냉장고 속, 그깟 토마토 하나.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진로를 결정하고,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미술학원, 미술학원이 끝나면 밤늦게까지 공부.

그때의 나는 집에서 그야말로 '상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냉장고 안에 '토마토'가 하나 있었다.

별생각 없이 토마토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벌컥- 내 방문을 열었다.


"토마토 네가 먹었어?"

"응"

"왜 네가 먹어?"

"먹으면 안 돼?"

"그거 엄마 꺼야, 엄마 꺼!"

"그깟 토마토 하나 먹은 걸로.. 뭐 이렇게까지 화를 내!!"


쾅! 방문을 닫았다.

그깟 토마토 하나 먹은 걸로 화를 내는 엄마에게 서운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엄마와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쑥- 불쑥-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의 엄마는 늘 쓸고 닦고, 또 닦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청소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는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의 엄마는 사고만 치는 남편에 대한 화를 '잊기 위해' 쓸고 닦아야했다.

그때의 엄마는 어린 두 자식들을 데리고 '살기 위해'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때의 엄마는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때의 엄마는 위로받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던 거 같다.

하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는 아빠와 이혼을 했다.

그리고 엄마는 늦게까지 식당에서 일을 했다.

우리는 더 가난해졌지만 큰 딸은 욕심이 많았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런 딸을 응원했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밀린 집안일을 하고, 공부하는 딸을 위해 간식을 만들었다.


그때 엄마는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그저 예민한 딸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버텨야 했다.

그때 그런 엄마를 응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의 엄마는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때의 엄마는 위로받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던 거 같다.

하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늦은 밤 어린 딸을 붙잡고 서럽게 울었던 것도, 토마토 하나 때문에 불같이 화를 냈던 것도...

버티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의 몸무림이었다.

그게 엄마의 외로움이었다는 걸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일이 힘들 때, 사람이 버거울 때, 아플 때, 힘든 결정을 해야 할 때, 집에 와서 하염없이 퍼붓고,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 생각한다.


"엄마, 엄마는 왜 나를 혼자 뒀어?"

엄마가 떠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아직까지

엄마 없는 세상의 외로움이 너무 크다.


그런데 문득문득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밤이면

엄마가 내 옆에 계속 있었다면, 나는 엄마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엄마에게 남편이 있었지만

엄마에게도 친구가 있었지만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지만

엄마에게 자식이 있었지만

그때의 엄마는...... 혼자였다.


"엄마, 엄마는 어떻게 버텼어?"

명절이 다가와서인지 엄마가 새삼스레 더 보고 싶어 진다.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이상하게도 엄마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내 방문을 자주 열었는데

나는 엄마의 방문을 열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 많이 외로웠겠다. 몰라서 정말 미안해.

너무 늦었지만 엄마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출처: 스위첸 '엄마의 빈방'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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