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괜찮다는 엄마의 말을 믿기로 했다.
1999년 10월, 미술학원에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부르셨다. 엄마가 병원에 있으니 빨리 가보라고.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가니 엄마가 응급실 구석에 누워있었다. 우리 집은 계단을 30개쯤 내려가야 하는 반지하였는데, 그 계단 쪽에는 전등이 없어서 밤에는 더 캄캄했다. 엄마가 그 익숙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고 한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엄마에게 '조심 좀 하지!'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그 일로 엄마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엄마가 입원하고, 얼마 후에 목포에 사는 큰 이모가 올라왔다. 나는 고 3이고, 동생은 아직 어리고, 엄마 혼자 병원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겠지만 나를 보는 이모의 큰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했다. 엄마에게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엄마는 괜찮다고, 고3인데 신경 써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는 엄마의 말을 믿기로 했다.
고 3인 나는 공부뿐만 아니라 실내 디자인과에 가기 위해 미술학원을 병행해야 했다. 그때 나는 엄마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고 말았다. 병원 데스크 옆 보드판에, 또렷이 적힌 엄마 이름 옆에 'cancer'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cancer'에 다른 뜻이 있길 바라고 바랬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엄마는 10kg 정도 살이 빠졌다. 작은 병원부터 큰 병원까지,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다녔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저 신경성 위염이라고만 생각했다. 엄마는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고, 그만큼 병원도 정말 많이 다녔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 엄마가 암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수능이 2달도 안 남았기에 나는 수능이 끝날 때까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학원이 끝나면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갔지만 엄마는 끝끝내 엄마의 병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끝끝내 엄마의 병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능이 끝났을 때, 엄마는 눈으로 확연히 보일만큼 수척해져 있었다. 아빠가 찾아오고, 외할머니가 올라왔다. 엄마는 뼈로 전이된 암이었다. 일반 검사로는 알 수 없는 몇백만 분의 확률의 암이었다고 한다.
엄마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아프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정말 아프니까 아프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에게 내 시간을 전부 쏟을 수가 없었다. 수능은 끝났지만 나에게는 실기시험이 남아있었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엄마는 그런 딸을 위해 또다시 괜찮아져야만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이례적인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였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은 엄마와 함께 병원에서 잠을 잤다. 피곤해서인지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떠지지 않는 눈을 뜨니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나는 '다 나은 거야?' 하고 물었다. 엄마는 '그만 집에 가자'라고 말했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엄마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모가 들어왔고, 의사 선생님들이 들어왔고, 뒤늦게 들어온 남동생은 엄마의 발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는 그날, 떠나기 전에 나를 깨웠던 거다. 엄마는 그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내 생각뿐이었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어서 정말 미안했어
어릴 적 나는 말을 잘 듣는 아이였고, 성적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일탈은 꿈꿔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학을 가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을 하고, 적당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투닥투닥하며 사는 삶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대학부터 가야 했다. 그때는 다른 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불안정한 직업인 프리랜서가 됐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아무리 생각한 대로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이렇게 180도 뒤엉킬 거라고는 생각이나 했을까.
그깟 대학이 뭐라고. 그때 엄마는 어떻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 이기심 때문에 엄마는 마지막까지 외롭게 떠났다. 그때 엄마 나이가 39살이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내 나이가 39살이 된다. 삶이 녹녹지 않을 때마다 엄마를 많이 원망했다. 그런데 39살이 가까워오니, 39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젊은 나이란 생각이 든다.
혼자도 이렇게 힘든데 두 아이까지 키우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지금은 엄마가 내 곁에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2월 26일, 오늘은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때 엄마한테 하지 못한 말을 해야겠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이어서 정말 미안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