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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Jan 15. 2020

힘내라는 말 대신

: 너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


오랜만에 강남 나들이였다. 피디님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지이잉~ 진동이 울렸다. 슬쩍 핸드폰을 보니 전주 친구의 이름이 보였다. 이야기 중이라 거절을 누를까 생각했는데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롯데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테이블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바로 일어났다. 택시를 타고,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어야 했지만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음이 앞섰다. 남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옷을 부탁하고,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장례식장에 가면 숨이 탁- 막힌다. 마침 전화를 주었던 전주 친구가 도착했고, 숨을 가다듬고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롯데 친구는 아버지가 오랜 투병생활을 해오셔서 그런지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애써 웃는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늦은 밤, 장례식장 한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예상보다 손님이 많이 와서 준비한 밥이 떨어지자 친구의 언니들이 울고 있었다. 롯데 친구는 4 자매 중에 막내다. 하지만 언니들이 언니 역할을 제대로 못하다 보니 친구는 늘 맏이 역할을 하고 있다. 나와 전주 친구는 정신없는 친구를 위해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우선 오고 있는 친구들에게 편의점에 있는 햇반을 긁어오라고 말하고, 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손님들을 맞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3일이 지났다. 친구 아버지를 납골당까지 모시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롯데 친구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고마워'

'그럼 밥 사'

'당연하지. 언제든 말만 해'

'한 끼도 안 먹었더니 배고프다. 내가 갈게'

'지금?'

'지금!'




힘내라는 말 대신


나는 19살 겨울에 엄마를 잃었다. 늘 부족하다 생각했으나 곱게 자란 딸이었고, 그런 내게 엄마 없는 세상은 불구덩이였다. 불구덩이 위에 앉아있는 내게 사람들은 물었다.


"괜찮아?" 

난 뜨거워 앉지도 서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괜찮아? 는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위로다.


"힘들겠지만.. 네가 힘내야지"

힘들걸 알면서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나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힘낼 수 없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할 위로다.  


그런데 그때 내게 위로가 된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교회에서 다른 언니들과 야동을 돌려보는 걸 목격하고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언니, 바로 선릉역 언니였다.  


밥 먹었니?라고 묻기보다 "밥 먹자. 배고프다"

뭐 먹을래?라고 묻기보다 "난 치킨 날개 좋아해! 그러니까 나머진 너 먹어"


언니는 늘 틱틱거렸다. 언니는 남들이 다 하는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귀찮게 했다. 솔직히 뭐 이런 똘아이가 다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언니에게 짜증을 냈다.


"왜 자꾸 와?" 

"너 죽으면 신고하려고" 


나는 작품이 끝나고, 다시 백수 생활을 시작하면 깊은 잠수를 탄다. 핸드폰 따위 침대 어딘가에 던져둔다. 연락은 물론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오롯이 즐긴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유일하게 연락하는 사람은 선릉역 언니다. 말없이 잠수를 타면 불쑥 집으로 쳐들어 와 내 허락 따위 필요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뭐 저런 똘아이가 다 있지?라고 생각했던 선릉역 언니는 아직까지 내가 죽으면 나를 제일 먼저 발견해줄 사람이다.




너에게 보내는 나의 작은 위로


롯데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년 되지 않은 거 같은데, 이번엔 어머니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번 겪어서 그런지 담담하다며 씩씩하게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데 괜히 내가 더 울컥했다. 그럼에도 "괜찮아?""힘내"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녀석이 괜찮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꺼내기 힘든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은 정말 힘든 사람에겐 꺼내기조차 어려운 말이었다. 19살의 내게 사람들이 해준 "괜찮아""힘내"라는 말 역시 분명 그들이 어렵게 꺼낸 위로의 말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그 말들 역시 그들의 진심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 큰 일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위로를 전해야 하는 건지 생각한다. 마음은 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기도 하고 내 앞에 떨어진 불똥들을 먼저 치우느라 깜빡 잊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친구에게 뜬금없이 문자가 왔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말이 '나 지금 힘들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 백수니까. 밥은 네가 사라'

사실 밥은 언제나 친구가 산다. 자기 하고 싶은 거 한다고 늘 없이 사는 나에게 언제나 밥을 사주는 착한 녀석이다. 선릉역 언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롯데 친구에게도 불쑥 찾아가는 내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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