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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Jan 28. 2020

너구리 총각과 평행주차

: 한밤 중 나타난 영웅, 예상치 못한 19금.

20살에 운전면허증을 따고, 26살에 장롱면허를 탈출해서, 10년이 넘도록 운전을 했다.

운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의 특성상 필요하기 때문에 운전을 해야 했다. 그리고 3년 전인가?

남동생이 타던 중고차를 나에게 선물해 줬다. 그렇다. 드디어 나에게도 자차가 생겼다.


10년 이상의 운전경력과 자차. 이 정도면 운전을 못하는 게 이상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운전이 어렵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주차는 다른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그렇다. 주차는 놀랍도록 늘지를 않는다. T주차는 그나마 할 수 있는데, 평행주차는 한 번도, 한 번에 성공해본 적이 없다.


운전은 어렵다. 그러나 주차가 더 어렵다





한밤 중에 나타난 영웅, 너구리 총각

오랜만에 차를 가지고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내 자리에 버젓이 다른 사람의 차가 주차되어있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라 차를 빼 달라고 전화하기도 애매해서 동네를 빙빙~ 돌았지만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주차하기 싫은 자리, 빌라 옆에 주차를 하기로 결심했다.


추운 날씨지만, 양쪽 창문을 모두 열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이고 안전거리를 확인하고, 차를 뒤로 조금씩 밀어 넣었다.

앞에는 집주인 아저씨의 택시, 뒤에는 그냥 봐도 비싸 보이는 외제차. 

압박감이 나를 계속 차에서 내리게 만들었다. 내려서 확인하고, 다시 조금 넣고, 다시 내리고, 다시 조금 넣고...


그때였다.

딸랑~ 집 근처 편의점에서 나와 너구리 라면 2개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총총총~ 지나가던 총각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의 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그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도망치듯 다시 차를 뺐다.

그가 편의점을 향해 갈 때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동안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를 빙빙~ 돌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망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런데 빌라 옆에 너구리 총각이 서 있었다. 그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는 나를 향해 너구리 총각이 결심한 듯 발을 움직였다.

그의 눈에 비친 호의를 캐치한 나는 재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대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봐드릴게요"

"아... 저는 못할 거 같아요"

"하실 수 있어요"


아직 20대 정도로 보이는 어린 청년이었지만 그는 제법 단호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혼자 할 때보다 누군가 봐주는 게 더 긴장이 됐다.


"무서운데..."

"제가 보고 있어요"

"박을 거 같아요"

"일단 뒤로 살짝 빼보세요"


"더더더더더더..."

"못할 거 같아요"

"조금만 더더...."

"그냥 빼야 될 거 같아요"

"할 수 있어요."

"못해요"

"잘하고 있어요. 천천히 조금만 더"

"더 가도 돼요?"

"아까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이제 살짝 앞으로 뺐다가 다시 넣어보죠"

"네"


그렇게 20여분 동안 "못할 거 같아요"와 "할 수 있다", "넣었다""뺐다"를 무한 반복하다 주차를 마쳤다.


"감사합니다."

"잘하셨어요"

"혼자라면 못했을 거예요"

"하시다 보면 좋아질 겁니다"


그렇게 쿨한 멘트를 남기고, 너구리 총각은 옷깃을 여미며 집을 향해 총총총~ 뛰어갔다.




"어제 몇 시에 들어갔어?

"너구리 총각이 아니었다면 차에서 자다가 입 돌아갔어"

"뭔 소리야?"


어젯밤 해프닝에 대해 듣던 친구가 말했다.

"야, 뭔가 겁나 야해"

"뭐가?"
"아니, 그게 사운드만 들렸다고 생각해봐"

"응?"


아...................... 그래서 앞집 2층 창문에 불이 켜졌나?

저런.... 늦은 새벽에......... 본의 아니게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너구리 라면 2개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슬리퍼 사이에 시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도

나의 주차를 끝까지 도와준 너구리 총각은 그날 밤 나의 영웅이었다.



해도 해도 어려운 평행주차 (자료출처: 현대 Mn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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