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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Jan 29. 2020

착한 척하며 살기로 했다.

: 호의.


압구정으로 출근을 할 때의 일이다. 아침 8시 50분, 늦지 않기 위해 출구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앞에서 풀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홍해가 갈라지듯 멈춰 선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피해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로 길이 나뉘었다. 올라가 보니 계단 중간에 젊은 여자가 쓰러져있었다.여자의 입에는 약간의 거품이 있었고, 나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 앞에 섰다. 그때였다. 


뒤에서 한 아주머니가 후다닥- 달려와서 젊은 여자를 붙들고 물었다. "괜찮아요?" 이내 남학생도 "구급차를 부를까요?"라고 물으며 젊은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정신이 드는지 얼굴을 가리고는 머리를 조금 끄덕였다. 나도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선뜻 발과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저 상황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이 나처럼 여자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들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불만에 섞인 목소리가 커졌다.


"괜찮아요?"라고 물었던 아주머니는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여자의 머리 밑에 놔주고, 남학생은 사람들이 지나 가도록 안내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고개를 계속 뒤로 한채 그 자리를 벗어났다.




몇 해전 휴가 때의 일이다. 강릉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둠치 둠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차가 사거리 횡단보도에 멈췄을 때,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왼편에서 레미콘 한대가 휘청 휘청~ 돌진해 오는 게 보였다.


이내 쿠쾅쾅쾅- 엄청난 소음이 들렸고, 레미콘이 끼익~ 넘어진채 한참을 미끄러지다 멈췄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다 보니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사이 옆 차선에 있던 아저씨는 차에서 내려 레미콘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이내 몇몇 사람들이 레미콘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옆좌석만 쳐다보는 동안 사람들은 레미콘 안에서 운전기사님을 꺼냈다. 신호가 바뀐 지 한참이 지나도록 멈춰있는 차를 향해 영문을 알리 없는 뒤차들은 경적을 울려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는 차를 출발시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호의 : 친절한 마음씨 또는 좋게 생각해주는 마음


나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던가? 


내가 베풀었던 '호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역에 가던 길이었다. 에스컬레이터에 막 발을 디뎠는데 앞에 큰 백팩을 맨 여자가 보였다. 백팩의 지퍼가 열려 내용물이 그대로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선뜻 지퍼를 닫아주었다. 흠칫 놀란 백팩 여자가 뒤돌아봤다.

"가방이 열려있어서요"


백팩 여자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가방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출구를 향해 걸으며 백팩 여자가 나를 한번 더 힐끔 쳐다봤다. '뭐야? 저 태도는?' 백팩 여자의 행동에 순식간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친구를 만나자마자 백팩 여자에 대해 말했다.

"가방이 열렸다고 말을 했어야지. 그걸 네가 왜 닫아?"

"아, 그게 내가 잘못한 거야? 쏟아질 거 같아서 닫아준 건데?"

"어. 그건 네가 잘못한 거야!"


물론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사건사고들이 있다. 그래서 믿기보다 의심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진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베풀 수 있는 그런 작은 '호의'조차 '의심'을 받으니...

다음에 또 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냥 모른 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봉사 동아리였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도시락을 배달해 드리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일이었다. 나는 그 봉사활동을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는 봉사를 하면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살다보니 나는 봉사를 하는 나를 좋아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못하고, 내가 베푼 '호의'가 '의심'으로 돌아왔을 때는 방법을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다음부턴 나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좋은 사람인 '척' 하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칭찬받는 게 좋았던 사람인 것이다.




착한 척하다 보니까 삶이 됐다

(자료출처: 더본코리아)

“처음에 장사를 하면서 손님을 더 편하게 모으려고 가격도 깎고, 양도 많이 줬어요. 그런데 손님들이 전에 없던 칭찬을 하더라고요. 칭찬을 받다 보니까 제가 변했어요. 방송하면서도 좋은 게 방송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선한 척하고 공익을 위하는 척하고 남을 배려하는 척을 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척하는 제 모습을 보고 좋아한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칭찬을 받고 척이 커지게 됐어요. 척을 하나 진짜로 하나 결과는 똑같잖아요”


백종원은 잘 나가는 만큼 여러 오해를 받는다. 여전히 그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며, 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착한 척을 하다가 착한 삶을 살고 있는 백종원은 그 누구보다 보람찬 삶을 살고 있었다.(OSEN 기사)


나도 착한 척 하며 살기로 했다.


백종원의 "착한 척하다 보니까 삶이 됐다"는 말을 지금의 나에게도 적용시켜 보기로 했다.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는 말처럼 어느 날 지하철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교통사고의 운전자가... 불시에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일들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냥 지나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듣는 걸로도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 앞으로는 그냥 지나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이렇게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착한 척' 하면서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지금은 '착한 척'이지만, 언젠가는 그 척이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호의'가 사라진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의'가 필요한 세상이다.

상처 받을까 봐.. 오해받을까 봐.. 외면하기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오늘 하루 누군가의 히어로로 남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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