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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Jan 20. 2020

얼마를 받아야 괜찮은 건가요?

: 급여 협상.


지난 토요일은 전 작품의 제작, 연출팀 모임이 있었다. 3개월 만의 모임인지라 다들 '어떻게 지냈냐'는 말을 시작으로 슬기로운 백수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그러다 조감독이 설이 지나고 나면 미팅을 하기로 한 작품이 있다면서 물었다.


저는 얼마를 받아야 괜찮은 건가요?


얼마 전에 모조감독이 월 1300만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조감독이 월 1000만원을 찍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그 금액이 최고 금액이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바뀌니 또 올랐단다. 그 정도 금액을 주면서 그 조감독을 쓰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박탈감도 든다는 것이다.


얼마가 받고 싶은데요?


그는 조감독으로 2개의 작품을 끝냈다. 그동안은 지인 혹은 지인의 소개로 일을 했기 때문에 협상이랄 게 없이 주는 대로 받았단다. 그런데 그렇게 받은 급여가 누군가에게는 기준이 되었고, '덕분에 적게 받았다'며 질타 아닌 질타 받았단다. 표준 근로가 도입되기 전부터 지금까지의 과도기를 모두 겪고 있는 그로서는 '도대체 얼마를 불러야 괜찮은 건지' 고민이 된다는 거다.




남들도 다 그렇게 받잖아요


새해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부산스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피디님의 전화였다.

"야, 요즘 조감독은 얼마나 받냐?"

"ㅎㅎㅎ 왜요? 얼마나 달라고 하는대요?"


새로운 작품을 하게 되면 설렘도 있지만.. 스텝 라인업(=그러니까 일반 회사로 치자면 연봉 협상)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전쟁이다. 피디님은 방금 조감독 후보를 미팅했는데, 이제 1작품 조감독을 끝내고 온 친구가 월 650만원을 불렀단다. 그 친구의 경력에 비해 너무 큰 금액이라 그 돈을 받고 싶은 이유에 대해 물었단다.


"남들도 다 그렇게 받잖아요" 놀랍지 않다. 스태프들과 급여를 협상을 할 때 항상 듣는 고정 멘트다. 

피디님은 현재 제작 중인 다른 영화들의 조감독들의 경력 대비 급여를 말해주며, 그 금액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미팅을 끝냈다고 한다.


'얼마를 받아야 할까' 고민하다 보면

같은 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혹은 선배들에게 그들의 급여를 물어보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렇듯 그들에게도 급여는 자존심이다. 그러니까 100%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받은 금액 중에서 가장 많이 받은 금액을 말해준다.


'가장 많이 받은 금액?' 

그러니까 감독 혹은 제작자가 부득이한 상황에서든, 욕심에서든... 연장근로를 많이 하는 작품의 경우, 그 작품의 스프들의 급여는 당연히 쭉쭉- 올라가게 된다. 다시 말해, 이런 영화의 경우 촬영이 3개월 동안 진행된다면 매 달 받는 급여는 그 달에 연장근로 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자, 그럼 부득이한 상황이 많았던 혹은 큰 예산의 작품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너 얼마 받아?'라고 물어봤다면? 그 친구는 '왜' 그 금액을 받았는지보다 가장 많이 받은 달의 금액을 말해준다. 그럼 그 금액을 들은 나는 생각한다.


'저 친구보다는 많이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 미팅할 때 그 친구가 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내가 받고 싶은 금액을 부르게 된다.

물론, 이 논리가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일단은 서로 고민해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지급된 급여 정산서를 찾아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10명 중 1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급여를 솔직하게 말해주는 친구는 없다.

 

그러니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들도' 그렇게 받고 있지 않다. 애초에 '남들이 말하는 기준'이 잘못되었다.

실력을 늘리고, 금액을 올리는 건 생각 안 하고, 남들이 기준이 된다. 남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남들만큼 실력을 늘려라. 양아치라고 떠들기 전에, 말도 안 된다고 말하기 전에 부끄러움이 뭔지 알아야 한다.

  



전 작품보다는 많이 받고 싶어요.


이 역시 모든 스태프들이 말하는 고정 멘트다. 

앞에 '남들도 다 그렇게 받잖아요' 보다 조금 더 설득력 있다. 하지만 전 작품과 이번 작품은 급여를 책정하는 '기준'이 다르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전 작품에서는 시급을 10,000원을 받고, 근로시간은 320시간이었다.

OK.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시급이 11,000원이고, 근로 시간이 280시간이다.

분명 시급은 전작품보다 올랐다. 하지만 내가 받는 급여는 전 작품보다 적어졌다.


'시급 올랐는데, 급여가 낮아진다고?'

그렇다. 분명 시급은 전 작품보다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일을 더 적게 한다. '일을 적게 하니까 더 적게 받는다?'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전 작품보다 급여가 낮아지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 다.

그러니까 적게 일하니까 적게 받는다. 이 논리를 던지면 전 작품이라는 기준은 없어진다.

그때부터는 억지가 시작된다. '됐고! 무조건 전 작품보다는 많이 달라고!'.


그러니까 작품마다 급여 책정에 대한, 근로시간에 대한, 시급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 작품이 기준이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어딘가 잘못되었다.




기술파트들은 많이 받잖아요.


"미술팀이랑 협의가 잘 안돼요."

이제 막 첫 제작실장을 하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유인즉, 기술파트들이 얼마를 받는지 다 아는데... 미술 파트는 프리(촬영 준비)도 하는데, 촬영에만 투입되는 기술파트와 급여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다. 프리를 하는 스태프들과 급여를 협상을 할 때 항상 듣는 고정 멘트다.


기술파트는 표준 근로가 도입되기 전부터 많은 금액을 받았다.(그러니까 어릴 적 부모님들이 그렇게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나 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머리가 이해한다고해도 급여낮아지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 다.

그러니까 나를 비롯해 많은 파트들은, 기술파트를 내릴 수 없으니, 우리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조금씩 바뀌고 있고, 계속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딱지 뒤집듯 한 번에 바꿀 수가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그리고 급여를 협상하는 제작파트 역시 기술파트가 아니고, 똑같 올라가야 하는 대상이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고, 많이 받을수록 좋은 건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래서 제작파트 급여를 협상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한다.


전화를 건 제작실장은 프리 스태프와 협의점이 좁혀지지 않자 자칫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게 될까..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뇌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말에 공감하고 들어주고, 지금 제안할 수 있는 최선을 말해보고.. 그래도 좁혀지지 않는다면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과 이번 작품은 함께 할 수 없고'




모두가 같은 상황일 수는 없고
각자가 가진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지게 됩니다.


최근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보고있다. 처음엔 스포츠 드라마라고만 생각했는데 <스토브리그>는 내가 일을 하면서 했던 생각, 만났던 사람, 겪었던 일들이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흠뻑 빠져 버렸다.


'얼마를 받아야 괜찮은 건가?'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스토브리그> 8화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이 화의 주된 이슈는 선수들의 연봉협상이다. 협상 중에 선을 넘은 선수에게 운영팀장이 소리친다.

"이렇게 할 수 있어도 이렇게 안 했던 거는 우리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서죠. 드림즈가 지난 시즌보다 조금 더 잘해보자는 목표를 가진 동료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서영주씨는 동료의식이 있었어요?
금액차이가 아무리 커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의견차이를 좁히는 방식이 그따위인 사람은 동료가 아니지.
선을 넘은 사람하고는 다시 웃으면서 협상할 마음이 안드네요.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
출처: SBS <스토브리그>


제작파트는 <스토브리그>의 운영팀과 같은 역할을 한다. 급여 협상을 하다 보면 스태프들을 이해하는 감정과 별개로 울컥 때도 많다. 그러니까 우리도 사람인지라 똑같이 대하고 싶어 진다.


"남들도 다 그렇게 받잖아요"라고만 말하면.. "네가 그 사람만큼 일을 하니?"라고

"전 작품보다는 많이 주세요"라고만 말하면.. "그럼 그런 작품만 골라서 하세요"라고

"기술파트들은 많이 받잖아요"라고만 말하면.. "그럼 기술파트 하세요"라고

"드라마는 많이 주잖아요"라고만 말하면.. "그럼 드라마를 가세요"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동료라고 생각해서이다. 금액차이가 클 경우, 의견차이를 좁히는 방식에서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함께 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한다.




표준 근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영화 제작환경은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좋은 변화인 건 분명하지만, 표준 근로를 적용하는 기준이 투자사, 제작사 등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까 지금의 표준 근로는 분명 기준은 있지만, 정해진 기준이 없다. 그러다 보니 급여를 책정하는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얼마를 받아야 괜찮은 건지'를 고민하는 조감독에게 앞에 말한 고정 멘트들은 하지 말, 그 작품에서 생각하는 기준을 물어보고, 그들이 제안하는 금액을 들어보고, 받고 싶은 금액과 차이가 크다면 최대한 '설득하고 조율' 해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딘가 찜찜하다. 사실 이 말은 뻔한 말이지만 정답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지금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같은 고민하고 있다. '요즘 얼마나 받냐?'를 물어보는 피디님께 '그들이 그 정도 받으면 저는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라고 되물었었다.

 

모두가 점점 더 많이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작품에 따른 '기준'을 세우는 게 옳은 일인 건가?

그저 '남들만큼''남들보다' 많이 받는 게 맞는 건 아닐까?


결국 '얼마를 받아야 괜찮은 건가?'라는 고민을 하다 보면 돌고 도는 고민이다.

급여라는 게 당연히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많이 받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적당히... 만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단기 프리랜서로서, 영화인으로서 여러 해가 지났지만,

매번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괜찮은 건지는 너무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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