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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Feb 01. 2020

칭찬쟁이를 곁에 두기.

: 칭찬에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이동욱의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연상호 감독이 나와서 창작 꿀팁으로 '칭찬쟁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보았다.

(자료출처: SBS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 연상호 감독 편)


처음 시작할 땐 '칭찬쟁이'를 곁에 두는 게 좋다.


냉철하게 분석해주는 사람보다, 그냥 무조건 칭찬해주는 사람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술이나 연기도 그렇고 코미디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인 기준이란 게 존재할 수 없다. 어떤 게 잘되고, 어떤 게 안될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정확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동력이 더 중요하다. 당시에 '잘한다''재능 있다'가 제일 큰 동력이 된다.


가끔씩 시나리오 조언을 청하는 후배에게 "저한테 보내지 말고, '칭찬쟁이'한테 보내라"라고 말한다.(연상호 감독은 냉청한 분석가 타입이라서) '칭찬쟁이'한테 보내면 '오, 좋은데?"라고 말해주니까.


리고 나도 시나리오가 나오면 '오, 좋은데?'라고 말해주는 사람에게 먼저 보여준다. 그래야 쓰고 싶어 진다. '이건 좀 그런데?'라고 말하면 쓰기가 싫어진다.




'칭찬쟁이'는 제일 큰 동력이 된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주로 내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내 글을 읽은 친구가 말했다.


"왜 네 이야길 써? 널 아는 사람이 읽으면 너인 줄 다 알걸?"

모두의 응원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오, 좋은데?'라는 칭찬을 듣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냉철한 분석가인 그를 통해 '이건 좀 그런데?'라는 말을 들으니 쓰는 게 겁이 났다. 읽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수십 번 다짐했던 마음이 수백 번 다시 생각하게 되고 불안해졌다. '역시 그만둬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불쑥불쑥 '런치 홈'에 내 글을 올라올 때 그래서 갑자기 조회수가 폭등할 때, 내 글에 라이킷을 눌러 줄 때, 나를 구독해주는 낯선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늘어갈 때마다 '오, 좋은데?'라는 칭찬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 '칭찬'들은 나를 커피숍에 나가도록 만든다. 쓰고 싶도록 만든다. 그리고 더 잘 쓰고 싶도록 만든다.


칭찬의 긍정적 효과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로젠탈 효과'이야기다. 미국 하버드대의 로젠탈 교수는 한 초등학교에서 20%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그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8개월 후 어떻게 됐을까?

명단에 오른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향상됐다. 교사의 '격려와 기대'가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됐기 때문이다. 즉, ‘믿는 만큼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연상호 감독의 말처럼 '칭찬'은 분명 엄청난 동력이 된다.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만큼 분명한 '칭찬'의 긍정적인 효과다.




'칭찬쟁이'만 곁에 두는 사람


'칭찬쟁이'에 대해서 쓰다 보니 얼마 전에 들은 '칭찬쟁이'만 곁에 두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 한참 프리 프로덕션(=촬영 준비)을 하고 있는 감독이다. 단편 영화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작년에 저예산 영화로 입봉 했다. 그리고 올해 전 작품의 2배가 넘는 예산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시나리오 수정고가 나온 그는 제작, 연출팀과 함께 시나리오 회의를 진행했다.


감독: 어땠어?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줘.

막내: 우~~~~ 와. 너무 재밌었어요.

감독: 허허.

막내: 와, 감독님 정말 최고예요~ (감독 홀릭)

감독: 괜찮아?

막내: 이거는 괜찮은 정도가 아니에요. 정말 대박이죠~

감독: 대박은 무슨,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들도 '솔직하게' 시나리오에 대한 리뷰를 했다. 그런데 그 회의 이후 감독은 막내하고만 시나리오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스프들은 그 막내를 통서만 나리오 수정사항을 듣게 됐다. 이에 조감독과 제작실장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그는 조감독과 제작실장과는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감독이 가오가 있지"


내가 알고 있는 '가오'라는 말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시나리오 리뷰를 솔직하게 했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업무를 책임지는 조감독과 제작실장과는 대화를 하지 않고, 자신에게 '칭찬'만 쏟아내는 막내하고만 대화를 하겠다는 감독에게 '가오'란 무엇일까?

  



'최고의 칭찬' 뒤에 숨겨진 독.


오래전에 읽었던 이솝우화 <까마귀와 여우>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료출처: <까마귀와 여우> 앙리 르마르, 판화작품)

나무 아래를 지나가던 여우가 고기를 입에 문 까마귀를 발견했다. 어떻게 하면 고기를 차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여우는 한 가지 꾀를 떠올렸다.


"까마귀야, 넌 정말 아름답구나. 깃털도 훌륭하고 날개 모양도 멋있어. 분명 목소리도 사랑스럽겠지?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은데 나에게 노래 좀 불러주지 않을래? 만약 네가 목소리까지 아름답다면 난 널 새들의 왕이라 부를 거야"


여우의 말을 들은 까마귀는 으쓱해졌다. 고의 칭찬을 해주는데 어느 까마귀가 싫어할까?

그동안 목소리가 흉하다는 말만 들었던 까마귀는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고기를 입에 문채로 큰 소리로 울었다.

"까아악, 까아악"


그 순간 물고 있던 고기가 땅에 떨어졌고, 여우는 재빨리 달려가 고기를 낚아채며 말했다.

"까마귀야, 잘 먹을게~ 네가 판단력까지 갖추었다면 새들의 왕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을 텐데"   




'칭찬'에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까마귀와 여우>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여우는 교활하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칭찬을 잘하면 상대방의 입속에 있는 고기도 뺏어 먹을 수 있다"걸 알려다. 즉, 칭찬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면, 여우의 말을 믿은 까마귀는 멍청하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칭찬에 현혹되면 입에 문 고기도 놓칠 수 있다"는 걸 알려다. 즉, 최고의 칭찬 뒤에 숨겨진 독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흠잡을 것이 없는 게 흠인 듯요""감독님은 정말 천재인가 봐요" 

'최고의 칭찬'을 해 주는데 어떤 감독이 싫어할까?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네가 판단력까지 갖추었다면, 좋은 감독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을 텐데"

'칭찬쟁이'만 곁에 두려는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칭찬'에 넋을 놓다 보면 자기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잊게 된다. '가오'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결국 손해만 보게 된다.




'칭찬쟁이'를 곁에 두는 건 분명 큰 동력이 된다. 하지만 '칭찬'을 많이 듣는 위치 혹은 사람일수록  '칭찬'이 달콤하다고 해서 '칭찬'에만 현혹되지 말고,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칭찬'을 많이 하는 것은 손해 볼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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