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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May 23. 202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꺼내 보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앨리스는 몸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눈물의 연못에 빠지기도 하고 기묘한 동물들과 만나는 등 우습고도 황당한 일을 겪는다. 담배 피우는 애벌레, 가발 쓴 두꺼비, 체셔 고양이 같은 희한한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트럼프 나라에 가서 여왕과 함께 크로케 경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한없이 뒤죽박죽 얽혀 있다.           - 네이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줄거리 -


드라마로 출근한 첫날은 연출의 요청으로 전체 스탭들이 모여서 인사하는 자리였다. 영화였다면 그래도 아는 사람이 1명은 있었을 텐데... 정말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이상한 나라에 발을 디뎠을 때, 옆 자리에 앉은 L이 누군가의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내 귀에 나지막이 소곤거렸다.

"이 구역에 또라이예요"

 

이 구역에 또라이. 일명 월천이의 이야기는 이후에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계속해서 들려왔다. 월천이는 많은 페이를 받으면서 제 할 일을 하지 않았고, 매일 술을 마셨으며,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면서도 이 구역의 왕이라도 되는냥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월천이가 가는 곳마다 분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월천이는 연출이 꽂은 사람이었고, 연출은 월천이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들려올 때마다 그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며 그를 두둔했다.


그렇게 월천이의 별명은 어느새 불사조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불사조가 된 월천이를 이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번 주 화요일 갑작스럽게 그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큰일이라도 벌어진냥 연출은 그를 붙잡았지만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으로 추측해보자면 아무리 연출이 큰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다고한들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사고들의 원인제공자인 그에게 쏟아내는 불만과 비난을 마냥 떠넘기고 모른척하기는 버거웠던 것 같다.


그렇게 어쩌면 박힌 돌이 었던 월천이가 스스로 떨어져 나가자 인성이가 웅크리고 있던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그가 왜 인성이 인고하니 그에 대한 소문이 '인성은 좋지 않으나 일은 잘한다.' 였단다. 월천이가 사라지도록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인성이는 지금 월천이의 자리에 앉아있다. 그리고 그동안 월천이의 그늘에서 애써 감춰두었던 인성을 곳곳에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문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걸 알게됐다. 인성이는 인성도 안 좋고, 일도 못한다.


또라이와 함께 일하다 보니 그 역시 또라이로 변한 건지 원래 또라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또라이가 사라지고 나니 또 다른 또라이가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월천이와 인성이 뿐 아니라 이 이상한 나라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겪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많은 경험들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이상한 나라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내일도 촬영은 계속된다.


호기심에 발을 디딘 이 이상한 나라에서

멈추지 못하고 달리기만 하는 기관차에 탑승해버린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오늘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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