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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Aug 30. 2020

어땠을까.

: 그때 내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싸이 - 어땠을까(feat. 박정현)

요즘 출퇴근 시간 동안 듣고 또 듣는 노래다. 그리고 매일 생각하는 단어다.

어땠을까 (그때 내가)

어땠을까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어땠을까 (지금 내가 )

어땠을까 (그만두지 않는다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보다 행복할까)




어땠을까
그때 내가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3년 전, 그러니까 내가 제작실장으로 일할  나는 함께 일했던 피디님이 작품에서 '하차'한다고 결정하 그 피디님과의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작품을 그만뒀다.


당시 제작사 대표는 기획력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당연히 제작파트의 수장으로 지어야 할 책임을 회피할 뿐 아니라 제작팀이 하는 일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제작파트의 수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촬영 준비 기간임에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당시 그곳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절을 바꿀 수 없다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우리(=제작팀)가 여기서 나가자!"라고 피디님을 여러 번 설득했지만, 영화일을 20년 이상하면서 웬만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피디님은 <작품에서 하차한다>라는 건 <영화일을 그만둘 결심이 섰을 때>라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우리들을 설득하고, "함께" 난관들을 헤쳐나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난관들을 속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후, 주연 배우가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 그로 인해 <시간이 돈>인 영화 현장이지만 부득이하게 촬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이런 '누구의 탓'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감독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선배라면 선배인 피디님께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부었다.(당시 감독은 재능이 있었지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은 꿋꿋하게 버티시던 피디님이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내려놓을 결심을 서게 만들었다.


그렇게 피디님이 작품에서 하차하겠다고 말하자 당시의 대표는 나에게 그 작품의 피디를 제안했다. (앞에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피디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피디가 될 것인가? 는 본인의 선택이다.) 당시 일주일만 더 일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아니 그 작품의 피디가 되어 작품을 무사히 끝내면 다음 작품까지도 보장해 주었지만... 나는 이런 대표와 감독과는, 이런 방법으로는 피디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존경하던 피디님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기에 나는 피디님과의 '의리'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그 이후, 다음 작품을 하기까지 꽤 긴 시간 동안 생계 때문에 힘들기지만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그때 그 회사에 남지 않은 것이, 그 감독의 편에 서지 않은 것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름'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굳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그 대표와 감독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제작사는 이 코로나 시국에도 내놓으라는 하는 배우들과 연이어 작품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능력 있는 제작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감독은 바로 다음 작품에서 그야말로 초 대박이 났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엄청난 성공을 한 감독 중에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내 선택을 이해한다고 했던 친구마저 내게 '바르게 일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내 인생의 전환점이 그때 그 책임을 회피하던 대표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감독과의 인연을 거기서 끝낸 것! 이 나의 현재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바름의 기준이 '사람'이 아니었어야 했다고.


그때 내 선택이 달랐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지금 내가 그만두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나는 지금 영화일이 아닌 드라마일을 하고 있다. 드라마는 처음이라 다른 파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이 작품의 <제작파트>가 일을 못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처음에는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팀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었으나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이들과 같은 <제작파트>라는 것이 부끄럽다.


처음엔 그냥 단순히 경력은 쌓였지만 제대로 일을 배운 적도, 일을 배우고자 하는 생각도 없는 그(=제작파트의 책임자)가 '그냥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회사나 그렇듯이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백업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가 뻥뻥- 사고를 치더라도 어찌저찌 현장은 돌아간다.


그런데 '그냥 일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던 그는 알고 보니 인성마저도 쓰레기였다. 그러니 강약약강. 강한 사람들 앞에서는 착하고 좋은 사람인 척,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겼고, 함께 일하던 친구가 그만두면서 그의 인성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사 대표는 그를 자르지 않고, 그저 '주의하라'는 경고만 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나는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사람들이 그저 '의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에 의해 확실한 정황이 드러났고, 업체와 삼자대면을 한 결과 '의심'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그는 그동안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고 있었다. 한 달에 200만원. 최소 6개월의 촬영. 그럼 1200만원이다. 물론 이건 밝혀진 '사실'만.


불같이 화를 내던 제작사 대표는 결국 소송을 한다고 했고, 그는 돈을 만든 건 사실이지만 '아직' 받은 건 아니니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그는 결국 짐을 싸 들고나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그가 '인수인계'라는 명목으로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이제 내가 별일을 다 겪는구나!'라는 기막힌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촬영은 계속되어야 하므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2배의 일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2주가 지났을 무렵 더 기가 막힌 소식을 들었다. 그가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제작사 대표는 업체가 돈을 다시 돌려준다고 했다! 면서 이 사건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단다. 그러니까 이 제작사는 일을 못해도, 인성에 문제가 있어도, 심지어 횡령을 해도 OK인 회사였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제작사에서 그래도 제작파트 욕을 덜 먹게 하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했던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크레딧'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크레딧'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작파트로, 이런 사람들과 한 팀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이 부끄.. 아니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더 이상 그가 터트리는 사고들을 백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런 마음으로 이 작품을 열심히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 '바르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라고 말했던 친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사람들도 버젓이 크레딧을 올리고, 그 크레딧으로 다음 작품을 가! 심지어 이 시국에 일을 안 하고도 월급을 받아간다. 그런데 너는? 그 사람들과 같은 팀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는 고작 그딴 이유로 그만둔다고? 이런 똥멍청이야! 너도 크레딧을 지키고, 돈을 벌어. 그리고 네 작품을 찾아. 그 사람들 일은 그 사람들에게 맡기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이 되어야 해. 네 변화를 누군가는 욕할지라도 그 변화가 너를 배신하지는 않을 거야."


친구의 말처럼 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면 내 인생은 달라질까?




내가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한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할까?


누군가는 그저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버티는 게 옳은 걸까?


그러니까 나는 '바르다'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선택'들이 다른 사람에겐 다소 미련하다고 느껴질지라도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선택'들을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영화일을 그만두거나 생계 때문에 힘들어한다.


결국 친구의 말처럼 '사람'보다는, '어떻게 일하는가?' 보다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이어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바르다'는 것, '옳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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