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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Oct 24. 2020

왜 자꾸 같은 불똥이 떨어지는 걸까?

: 드라마 '탄력적 근로제'에 대한 고민.


월요일, 부장이 출근하자마자 윗옷을 벗기도 전에 사무실에 있는 모두를 회의실로 집합시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었는데... 지난 주말, 방송사가 '탄력적 근로제' 문제로 노조로부터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문 안에 우리 드라마 이름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다고.

이에 방송사로부터 '문제'가 될만한 회차가 있었는지 확인 해 보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결국 안 그래도 바쁜 월요일에 방송사에 보내야 하는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 불똥이 떨어졌다. 이런 불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자꾸 같은 불똥이 떨어지는 걸까?


애초에 스태프들의 계약을 진행하기 전 제작총괄은 방송사에서 그동안의 진행했던 드라마들을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정리해 둔 주 52시간 근로에 관한 Q&A와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기준을 지켜서 계약을 진행하고, 촬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함께' 대응하겠지만, 제작사가 정한 기준으로 진행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은 제작사에 져야 한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오랜만에 드라마를 제작하는 이 제작사는 변화하고 있는 '용역 계약'의 방식에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제작총괄은 방송사에서 정리해 준 기준뿐 아니라 최근 제작하고 있는 드라마들을 조사했고, 결국 방송사에서 제안하는 기준과는 조금 다른 기준을 책임자인 부장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부장의 결정은 "됐고, 방송국을 따르자~~"였다.


그리하여 우리 드라마는 방송국에서 제시해준 기준대로 1주에 4회차, 회차 간 휴식 8시간을 '보장'해주는 대신 - '탄력적 근로제'를 준용하여 3개월 동안 평균 주 52시간을 맞추어 촬영을 할 수 있는 계약을 진행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주에 2회차를 찍더라도 날씨나 배우 스케줄 및 기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촬영을 못하게 되더라도 1주에 4회차의 일당은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일을 안 해도 돈을 준다고? 그럼 너무 좋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쪽만 좋은 계약은 없지 않은가?! 1주에 4회차를 '보장'을 해 주는 대신 3개월 동안 평균 주 52시간을 맞추어 촬영할 수 있다!라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즉, 앞에 못 찍은 만큼의 시간을 뒤에 한꺼번에 찍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하루에 최대 12시간이 아니라 20시간을 찍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앞에 올린 글에서 잠깐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영화와 드라마의 '표준 근로의 적용 기준'은 많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영화의 스태프들은 '시급'을 기준으로, 작품마다 약정한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을 기준으로 시간을 체크한 후 매월 '월급'을 받지만, 드라마의 스태프들은 1일 근로(회차) 수당인 '일당'을 기준으로, 작품마다 약정한 기간 동안의 '급여'를 받는다. ('월급'과 '급여'는 같은 말인 것 같지만 다르다. 그러니까 방송사에서는 한 달을 기준으로 '월급'을 게 되면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한 달이 아닌 기간을 약정하고 '급여'를 준다고. 고로 드라마 스태프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4대 보험가입도 안된다.)]





이런 건 줄 몰랐어요


촬영이 한 달 즈음 지났을 때, 노조로부터 첫 번째 공문을 받았다. 제작사와 방송사는 난리가 났고, 사무실은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기자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그리고 그 공문에 대한 답변 기일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노조에서 보낸 자료만을 근거로 마치 이 드라마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기사를 터뜨렸다. 분명 스태프 중 누군가가 신고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스태프인 내가 봐도 무리라고 생각할만한 촬영은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떨어진 불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불똥을 처리하기 위해 부랴부랴 제작총괄과 노조 관계자, 스태프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이런 불똥이 떨어진 '원인'에 대해 스태프들은 '탄력적 근로제'에 대해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고 이야기 했다. 작품마다, 방송사마다, 제작사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계약 당시 설명을 하고, 계약서에 내용이 버젓이 나와있고, 그 계약서에 직접 도장을 날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건 줄 몰랐다.'라고!  


결국 제작사와 방송사는 반박할만한 충분한 자료들을 노조제출하고, 스태프들에게 다시 한번 '탄력적 근로제'에 대한 설명을 했고, 촬영은 계속됐다. 처음이라 유독 뜨겁고, 모두에게 상처가 남았던 불똥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고, 무사히(?)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이 중반을 넘어설 즈음 두 번째 불똥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노조가 공문을 보내기 전에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또다시 우리 스태프로부터 '신고'를 받았다고.

노조는 일전 삼자대면을 통해 제작사의 입장을 이해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단은 스태프로부터 '신고'가 들어오면 공문을 보내야 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또 한 번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분명 서로 조금씩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각자의 입장에서의 '이해'였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부장은 스태프 대표가 아니라 '일당 스태프'들을 모두 사무실로 불렀다. 리고 스태프들에게 '탄력적 근로제'를 이대로 계속 유지하는 게 좋을지?! 노조에 신고한 스태프가 원했던 대로 '1일 12시간, 주 52시간을 지키는 촬영'을 하는 게 좋을지?! 를 두고 투표를 했다. 결과는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과반수 이상이 기존의 계약을 해지하는 계약을 원했다.


결국 우리 드라마는 방송사에서 제시해준 '탄력적 근로제'를 버리고, 스태프들이 원하는 계약을 다시 진행했다. 그렇게 이젠 더 이상 떨어질 불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또다시 '탄력적 근로제' 문제 앞에 우리 드라마의 이름이 수면에 떠올랐다. 첫 번째 불똥이 떨어졌을 때,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일단 분란을 일으키는 방식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이번 불똥은 그리 놀랍지 않았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탄력적 근로제' 이젠 알아야 한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 19로 인해서 모두 힘든 시기를 겪고 있고, 그로 인해서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 현장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밀접 접촉자의 접촉자만 있어도 촬영을 중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고, 급기야 방송사의 지침에 따라 2주 이상 촬영을 쉬기도 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일당 스태프들의 급여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결국 생계를 위해 그만두거나 쉬는 날에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스태프들도 생겼다. 그런데 만약 두 번째 불똥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탄력적 근로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아마도 우리 드라마의 스태프들은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었을 거다.


물론 코로나 19라는 불가항력 적인 상황에서의 결과를 두고, 이야기한 거지만... 코로나 19가  끝나기를 바라는 바램과는 다르게 앞으로 더 길어진다면 드라마 스태프들은 어떻게 될까? 무조건 '싫다'고 '신고'부터하기 전에 '탄력적 근로제'에 대한 적절한 고민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의도치 않게 노조가 제대로 된 '사실 확인'을 하기도 전에 먼저 분란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이라기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노조가 스태프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고 싸워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그로 인해 분명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말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실 확인'은 반드시 필요하다. 급하다고 해서 전쟁터에 나가면서 갑옷도 입지 않고 무조건 뛰어들면? 그저 만신창이만 될 뿐이다.

 

물론 이건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노조에 무조건 '신고'부터하기 전에 스태프 스스로가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의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잘 모르니까- 일단 도장을 찍고, 그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무조건 '신고'를 한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잘 모르면- 먼저 제작사나 방송국 놈들이 말하는 '탄력적 근로제'가 뭔지부터 알아보고, 만약 그 계약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작품에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에 '이런 건 줄 몰랐다!'라고 말하는 건 마트 한가운데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그저 울고 떼쓰기만 하는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드라마든, 영화든 지금보다 조금씩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들보다 조금 더 알아야한다.




+ 위에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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