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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Aug 20. 2022

기준도 수선이 될까

중고로 재봉틀을 하나 샀다. 난생 수선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점차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예뻐서 집었던 옷들은 하나같이 허리가 맞으면 다리가 길었다. 어깨가 맞으면 소매가 너무 컸다. 그렇다고 수선소에 맞기기엔 너무 비쌌고. 대충 접거나 걸쳐 입곤 했지만 제대로 입으려면 내게 맞는 사이즈가 필요했다.


서툴지만 시간 들여 한 땀씩 수정해갔다. 긴 기장은 줄이고 넓은 통을 좁히면서. 결국 어딜 뒤져도 내게 맞는 사이즈는 찾질 못했다. 웬만하면 셋 중 하나였다. 미디엄과 라지, 아니면 엑스라지. 또는 거기서 위아래로 한 단계 더 작거나 큰 것들. 그것들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을 내 사이즈는 안 보였다. 한 곳이 맞으면 약속이나 한 듯 꼭 다른 한 부분이 어긋났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의 기준인가 싶었다. 기성품 사이즈처럼 나이에 맞춰 가시적인 단계들에도 적응해나갔다. 때때로 몸에 안 맞는 옷처럼 불편하고 핏도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선택지가 없었으니 그저 적응해야 했을 뿐.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불편해도 억지로 끼워 넣고 있었다. 맞지 않는 소매에, 맞지 않는 기준에 욱여넣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재봉틀은 품이 많이 든다. 하나 고치기에도 여간 간단치 않았다. 그래도 혼자서 고칠 수 있단 사실이 소박하게 위로스러웠다.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수월해지지 않을까. 몇 없던 정해진 선택지 말고도 그 틈새에 숨어있을 내 것이 분명 있을 텐데. 그건 한 땀씩 줄여나가고 맞춰나가야 알 수 있을 텐데.


기준도 수선이 될까. 아직 안 해봐서 단언은 못 하겠지만, 어설픈 확신이 조금 들었다. 한 번도 안 해본 수선도 차츰 늘어가는 모습을 보니. 한 번도 안 해 본 것은 어차피 자신할 수 없다. 자신 없어도 일단 해보면 알지 않을까. 그래도 한 번 믿어보는 편이 나을 거라 여겼다. 기준도 분명, 수선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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