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현 Sep 29. 2022

길고양이


2주째 고양이가 안 보였다. 원룸 입구 주변을 맴돌던, 하얀 얼굴에 왼쪽 눈은 검정 얼룩이 짙게 낀 길고양이다. 안 보인 지 두 달이 꼬박 넘어가니 어느새 의식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입구를 나서며 꼭 한 번은 들여다보고 지나갔던 예전의 습관도 옅어졌다. 누군가 놓아둔 밥그릇이 여전히 그대로 놓인 채 줄어들지 않는 모습과는 달리, 길고양이 모습은 희미해져갔다.


웬만한 건 잊음으로 얼룩져간다. 예전엔 선명했던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다. 단어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던 단어였는데도. 눈 감고 쓸 수 있던 수식도 떠오르지 않는다. 노트가 허름해질 때까지 적어본 건데도. 그때 내가 짓던 표정도 모르겠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도 잊어간다. 그렇게 시냅스가 또 하나 툭 떨어진다. 하나둘, 시간에 흘려 많은 걸 잊어간다.


자주 이어지지 않는 연결은 의식도 못한 새 옅어진다. 기억을 담은 뉴런들은 자극이 없으면 자연스레 끊어진다. 효율을 중시하는 뇌다. 그런 뇌가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판단해서 그렇다. 그 덕에 빨리빨리 떠올릴 수도 있었고, 그 때문에 스멀스멀 잊어가기도 했다. 기억이 흩어지는 걸 막는 유일한 방법은 자꾸 의식하는 일, 그것 말고는 없었다. 단어를 반복해서 외우듯이 모든 게 똑같다.


예전의 기억이 점차 흐려졌다. 바쁘다는 핑계 속 의식도 함께 드문드문 놓고 살았다. 그래도 열심히 사니까,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와중에 저변에서 잊히는 건 피할 수는 없었지만. 모든 걸 의식하며 살려고는 않는다. 그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 단지 잊어선 안 될 것들, 추억이라고 하는 그것들에겐 의식할 수 있도록 이름을 붙여줘야 했다.


자주 떠올리다 보면, 길고양이도 언젠간 돌아오지 않을까. 돌아오면 그땐 그간 미뤘던 이름을 붙여주어야겠다. 눈도 마주치고 이름도 한번 불러보면서. 이름 없는 것들은 어느새 문득 떠나가는 법이니.

작가의 이전글 작은 성취들이 모이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