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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Jan 07. 2021

5교시 인생영역

6년 전 11월 어느날, 쌀쌀해진 날씨지만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해도 뜨지 않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했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다행히' 한 번밖에 없었던 수능날이었다. 처음 보는 장소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문제를 마주했던 날. 그때는 눈앞에 닥친 문제 대처에 온 정신을 다 쏟았다.


10대를 다 바쳐 준비했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무엇을 요구하는 시험이었을까. 수능은 '대학에서 학업을 이수할 수 있는 능력'을 판별하는 시험이다. 국영수 그리고 사회와 과학을 잘할수록 대학에서 학업을 이수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의문이 든다. 학생은 수험생이란 이름으로 바뀌며, 명문대를 위해 지정된 과목에만 모든 시간을 쏟는다.


'대학에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말. 인생이 뭔지도 모른채로 한 줌의 철학도 없이 문제 푸는 시간만 단축하려 애썼던 시기. 그 시절을 극복하고 나니 남는 건 인생에 대한 의문뿐이었다. 대학만 가면 인생이 뭔지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대학도 다를 바 없는 성적표 생산소였다.


성인이라는 문턱에서 치르는 수능. 그 시험이 언뜻 어른으로 가는 첫 관문이라 생각했다. 수능에서 점수를 잘 받을 수록 이상적인 어른이 될 거라 여겼다. 지금 주위를 돌아보면 또는 메스컴을 보다 보면 어른과 전혀 무관한 시험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국영수에서 뛰어나다는 게 인생을 잘사는 뜻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찍는 법만 가르쳤고 사는 법은 어째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국영수를 가르침 받기 전에 '인생 과목'을 배웠더라면, 객관식만이 아닌 주관식으로도 인생의 답을 찾는 연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4교시 탐구영역이 끝나면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시험을 더 치뤄야 했다. 6년 전 수능날 미처 보지 못 하고 나왔던 5교시 인생영역. 뒤늦게서야 치르지 않았던 시험준비를 하는 중이다. 객관식에 익숙했던 나는 여전히 정답을 모르겠다. 그래도 한 줄씩 적어보는 중이다, 주관식 정답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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