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현 Jan 08. 2021

수소인간

인간관계는 기체와 비슷합니다. 기체는 어떤 것보다도 자유롭습니다. 기체를 붙잡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한 눈 팔면 안 됩니다. 기체마냥 주변 사람들도 시시각각 흩어지려 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병마개를 제대로 닫아두지 않았더니 이미 절반 이상이 증발되었더군요.


인간관계는 어렵습니다. 그중에서 인간이 어려운 걸까요, 아니면 관계가 어려운 걸까요. 저는 둘 다 어렵지만, 관계가 조금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어렴풋이 이해가 될 때가 있지만 책에서 배운 내용을 '관계'에 적용해보면 어긋날 때가 많습니다.


수소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수소는 원자번호 1번입니다. 모든 원소 중 가장 가볍습니다. 가장 가벼운 원자이며 제일 만만한 원자이기도 합니다. 수소는 여러 원자와 결합하여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어 냅니다. 어느 집단을 가든 수소처럼 모두가 편히 다가가는 수소인간이 한 명씩은 보입니다.


사실 수소의 융화는 만만함이 아닙니다. 비결은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수소처럼 포용력과 이해력, 공감력이 바탕이 돼야 모두가 편히 다가올 수 있는 수소인간이 되지 않을까요. 배운 적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며 여태 타인을 이해하기 포기하고 수용하길 거부하며, 공감하지 못 했습니다.


저는 수소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수소가 되기에는 이미 제 안에 많은 욕심을 채워 넣어서 수소처럼 가벼워 지기는 글렀습니다. 대신 수소랑 부담 없이 결합할 수 있는 원자라도 되려 합니다. 수소에게조차 거부당한다면 아무리 정답 없는 인간관계라지만 정말로 틀렸다는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떠나는 기체를 억지로 붙잡으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두 손을 꽉 막더라도 기체는 그 틈을 기어이 찾아내어 도망가버립니다. 다만 가만히 있어도 다가오는 기체도 분명 존재합니다. 이젠 병뚜껑을 제대로 닫아두어야겠습니다. 증발을 막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수소를 조금씩 채워보려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5교시 인생영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