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현 Jan 11. 2021

커피가 쓰지 않다는 건

어렸을 땐 커피가 너무 썼습니다. 어른들이 하루에 한 잔씩은 꼭 마시는 커피 맛이 궁금해서 처음 맛보았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쓴맛에 인상만 찌푸렸습니다. 왜 마시는지 몰랐던 까만 음료. 한약 같던 시커먼 음료. 저는 쌉쌀한 커피보다 달콤한 콜라가 더 좋았습니다.


지금은 하루 한 잔의 커피가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쓴맛은 여전히 느껴지지만 딱히 쓰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쓴맛은 그대로인데 별로 안 느껴지다니요. 제가 성장하는 사이에 커피의 쓴맛이 약해지거나 한 일은 없을 건데 말입니다.


더 이상 쓴맛이 쓰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느새 쓴맛에 서서히 적응되어왔나 봅니다. 쓴맛이 쓰지 않다는 건 좋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예전보다 '씀'이 조금씩 덜 두렵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니 커피의 쓴맛은 쓰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씁쓸한 일이 많더라고요.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겪다 보면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처음 마주한 실패는 너무나도 아프고 쓰라립니다. 좌절과 낙담에 눈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더 큰 실패도 있으며 좌절 뒤에는 반드시 극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쓴맛을 느낄 때마다 미각은 조그마한 내성을 심어주었습니다. 하루에 한 잔씩 마셨던 커피가 지금의 쓴맛을 덜어주었듯이 말이죠. 커피가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만큼 앞으로 겪을 쓰디쓴 경험도 무뎌지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게 쓰다는 건 알 수 있을 정도만큼만 무뎌졌으면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수소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